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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전조율 없는 동행 초청, 비준 동의 압박용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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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어제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의장단과 여야 5당 대표가 평양 정상회담에 동행해 주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초청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전 야당과의 사전 협의는 없었다고 한다. 임 실장은 “우리가 초청하는 분들이 일정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정치적 부담도 있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정 조율 없이 공개 초청장부터 보낸 셈이다.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가 여야 간 큰 쟁점으로 부상한 마당이다. 남북 협력을 가속화하려는 여권과 북한의 비핵화 보장 없는 대북 지원을 우려하는 야당 입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어서다. 임 실장 기자회견 전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은 비준안 문제를 18일부터 열릴 남북 정상회담 후 재논의키로 합의했다. 임 실장의 공개 초청장은 다가올 정상회담 후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통과를 위한 정치적 압박이 아니냐는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다.

문제는 이런 여론몰이식 압박이 가져올 후유증이다. 오히려 야당의 반발과 한·미 탈동조화 현상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당장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실질적 비핵화가 확인되면 그 결과에 따라 우리도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실질적 비핵화를 추진할 수 있는 약속을 해 오길 바란다”고 초청 거절 의사를 밝혔다.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는 국회의장단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적 동의와 합의 과정 없는 남북 경협은 어차피 실행이 어렵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게다가 판문점 선언 이행엔 천문학적 재정 부담이 뒤따르는 만큼 국회 비준은 신중해야 한다는 측면도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진척 여부다. 아직은 많은 국민이 실현을 담보할 수 없는 ‘약속어음’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비준 즉시 대규모 대북 지원 예산 투입이 가능해지는 것과는 비대칭적이다. 서두를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일방적으로 압박할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