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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350잔 준비한 열성… '골프 팬덤'이 반가운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국홍의 19번 홀 버디(12)

프로골퍼의 팬카페 활동과 갤러리의 숫자는 골프투어의 흥행을 그대로 반영하는 지표다. 지난 2일 경북 왜관 파미힐스 클럽에서 열린 DGB 금융 대구경북오픈은 남자프로골프 투어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상이 깊었다. 1만 명에 가까운 갤러리들과 김태훈 선수의 팬카페가 뿜어내는 관중의 열정은 감동적이었다.

김태훈 프로가 팬과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사진 KPGA 제공]

김태훈 프로가 팬과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사진 KPGA 제공]

이번 대회에 경기위원으로 참가했다. 이날 대회가 시작하기 전 경기위원 중 한명이 내게 챔피언 조에 앞서 두 번째로 먼저 치는 김태훈 조를 신경 써야 한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남자프로 골퍼 중 팬카페 회원이 많고 가장 열성적으로 갤러리가 따라다니는 김태훈 선수가 방송조에 들어왔으니 경기운영에 각별히 신경을 쓰라는 이야기였다. 방송조란 성적이 좋아 JTBC 등 골프방송사에 대회를 생중계로 내보내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화면을 많이 잡는 조다.

이날 특히 김 선수를 따라다니는 팬카페 회원들의 행동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김 선수의 팬카페가 이날 골프장에 노란 푸드 트럭을 배치하고 입장하는 갤러리들에게 아메리카노 350잔을 제공했다. 마치 유재석 등 스타 연예인이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끝내고 나서 밥 차를 불러 제작진 등 관련자들에게 한 끼니 대접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태훈 선수의 팬카페는 그가 동아회원권 부산 오픈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메리카노 350잔을 선물했다. [사진 KPGA 제공]

김태훈 선수의 팬카페는 그가 동아회원권 부산 오픈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메리카노 350잔을 선물했다. [사진 KPGA 제공]

팬카페는 김 선수가 그 전주에 동아회원권 부산오픈에서 우승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이벤트를 열었다. 이번이 세 번째 우승이지만 카페회원들에게는 지난 16년 카이도 대회에서 우승한 지 무려 1015일 만에 이뤄진 쾌거였다.

김태훈의 호쾌한 장타와 훈남 스타일 매력에 빠져 2013년 만든 팬카페는 회원이 무려 657명이다. 40대 비중이 가장 크지만 20~60대 등 연령분포도 고르고 남녀 성비도 비슷하다.

이 팬카페의 선수 사랑은 유별나다.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가리지 않고 대회가 열리면 김 선수를 찾아 응원하는데, 평일 예선에는 20~30여 명, 주말 본선 대회에는 50여명이 골프장을 찾아 응원전을 벌인다고 한다.

DGB 대구경북오픈 마지막날 18번 홀에 운집한 갤러리 모습. [사진 KPGA 제공]

DGB 대구경북오픈 마지막날 18번 홀에 운집한 갤러리 모습. [사진 KPGA 제공]

내가 경기위원을 보는 1, 2, 3번 홀에서 이들 회원이 갤러리로 지나갈 때 유심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극성이다. 응원의 함성도 우렁찼다. 가만히 보니 김 선수만 응원하는 게 아니고 다른 동반 선수들한테도 잘할 때는 박수를 보내고 미스 퍼트 땐 아쉬워하는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배려심도 있다는 느낌이다.

김태훈 선수가 부상에 시달리고 스윙교정을 하다 3여 년 만에 우승을 거둔 데는 팬카페의 이 같은 열정적인 성원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김 선수는 이런 응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평소에도 대회 4일 중 3일은 갤러리로 나온 팬카페 회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가족같이 지낸다.

또 1년에 한 번씩 골프장에서 열리는 팬카페 연례행사에는 동료 프로골퍼들을 데리고 라운드도 같이하면서 원포인트 레슨도 하고 선수와 팬으로서 교감을 하면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있다.

이런 팬카페 활동은 선수나 갤러리 모두에게 대회의 만족도를 높이는 상승작용을 한다. 프로선수는 팬의 응원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고 팬들은 게임에 몰입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다만 김태훈 프로는 이날 8언더파로 공동 6위로 출발 했으나  2타를 까먹어 37위로 내려 앉아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태훈, 문도엽, 권성열 조가 대구경북오픈 마지막날 경기에서 갤러리들과 함께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 KPGA 제공]

김태훈, 문도엽, 권성열 조가 대구경북오픈 마지막날 경기에서 갤러리들과 함께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 KPGA 제공]

네이버에서 김태훈 팬카페를 운영하는 임재경씨(46)는 “김 선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늘 팬을 배려하는 등 인간적”이라면서 “훈남에다 실력도 좋아 이런 모습에 반한 팬이 많다”고 말했다. 또 “응원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고 강조했다.

현재 KPGA 프로골퍼 중 이형준, 최진호, 김인호 등 10여명의 선수가 100~150명의 회원이 가입한 밴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밴드도 조만간 카페로 확장될 가능성도 보인다.

이날 대구경북오픈은 남자프로선수들의 열성적인 팬들에 힘입어 갤러리가 1만 명에 육박했고 골프장과 협회는 챔피언 조를 따라오는 갤러리들에게 후반 10번 홀부터 페어웨이를 개방했다. 이날 18번 홀 그린으로 들어오는 챔피언 조를 뒤따르는 갤러리만 해도 1000여명으로 장관을 이뤘다.

많은 갤러리를 보면서 여자프로골프 협회 전무로 있던 2007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해 대회 수가 17개였고 박세리 등 해외파가 아닌 신지애, 서희경, 안선주 프로 등 국내파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여자투어가 살아나는 조짐을 보였다. 남자프로 골퍼들의 한국투어도 조만간 비상의 날개를 달 것 같다는 느낌이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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