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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한투처럼 할 수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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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경제연구소 부소장 논설위원

나현철 경제연구소 부소장 논설위원

요즘 직장인들 사이의 최대 화제 중 하나는 한투증권이다. 정확히는 한투증권에 다니는 몇몇 직원의 연봉이다. 이 회사 투자금융 담당 전무는 22억5900만원을 받아 회사 오너(13억원)와 전문 경영인(20억원)을 제치고 연봉 1위를 차지했다. 30대 중반의 파생상품 담당 차장은 22억3000만원을 받았다. 주가연계증권(ELS), 상장지수증권(ETN) 등 히트상품을 연달아 개발해 회사 매출과 순익을 크게 올렸다고 한다.

실적 좋으면 차장이 오너보다 더 받는 게 당연시 #연금 운용역 성과보상 늘려야 국민 노후에도 도움

한투증권의 평균 연봉은 증권업계에서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실적에 따른 성과급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일한 만큼, 돈을 번 만큼 가져가는 게 당연시된다. 오너인 김남구 부회장도 흔쾌히 이를 받아들인다. 이런 분위기 덕에 한투는 2005년 당시 동원증권에 인수된 이후 고속성장을 해왔다. 1분기 말 현재 자산규모가 약 40조원으로 대우증권을 인수한 미래에셋증권과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크게 보면 직원 몇 명 연봉 좀 더 주고 회사를 잘 키워온 셈이다.

새삼스레 한투 얘기를 꺼낸 건 국민연금 때문이다. 요즘 국민연금을 두고 말이 많다. 기금운용본부장(CIO) 선임을 둘러싸고 청와대의 개입 논란이 있더니 곧이어 연금 고갈 위험과 이에 따른 보험료 지급시기 연기, 보험료 인상 논란으로 확산됐다. 하나같이 인화성이 강한 뜨거운 주제지만 언제나처럼 한동안 떠들썩하다 수면 아래로 사그라들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누구나 무릎을 칠 만한 뾰족한 해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국민연금 문제의 근원은 지급 불안을 부르는 저출산 고령화다. 연금을 새로 붓는 사람은 줄고 받는 사람은 늘어나는 암울한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지금은 630조원을 굴리는 세계 3위 펀드라지만 2043년부터 지급액이 더 많아져 쪼그라들 전망이다. 연금 고갈시기도 당초 예상보다 빨라진 2057년으로 앞당겨진다.

안타깝게도 저출산 고령화를 뚝딱 되돌릴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 연금 재정이 파탄 나 개혁이 불가피한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뒷짐을 져서는 안 된다. 당장 개혁을 하지 못한다면 이 고통을 최대한 유예할 방도라도 궁리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과 함께 최대한 국민연금이 오래 지속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 있는 정부다.

그러기 위해 급한 게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다. 몇 백만원이면 연간수익률 1~2% 차이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600조원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1%포인트 차이가 6조다. 연간 수익률을 3%에서 5%로만 높여도 10년 뒤면 수익이 두배 차이가 난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국내 투자자에 비해서는 양호한 수익률을 올려왔다. 하지만 비슷한 다른 나라의 연금에 비해서는 성과가 미진한 것도 사실이다.

고수익은커녕 평균 수익도 내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아직 국내 채권에 절반 가까이를 투자한다. 해외투자 비중은 고작 30%뿐이다. 국내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은데 수익이 제대로 날 리 없다. 한투 같은 성과보상 체제도 미진하다. 국민연금 CIO의 연봉은 3억원, 투자 실무 책임자인 실장급의 연봉은 1억4000만원 정도다. 성과급을 더해서 그렇다. 훨씬 적은 돈을 굴리는 증권업계보다 작은데 공직자라고 퇴직 후 취업제한까지 받는다. 이런 구조에선 한투의 고액연봉 전무나 차장이 나오기 어렵다. 국민들의 노후 지갑인 국민연금이 제대로 불어나길 기대하기도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은 욕심에서 나온다. 그 욕심은 반사회적이거나 투기적인 탐욕이 아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에 굴레를 씌우는 공공기관이라는 딱지를 국민연금 운용역에 한해서라도 풀어주면 어떨까 싶다. 대박을 쳐 국민 노후에 기여한 운용역이 수십,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고 자랑스레 웃음 짓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나현철 경제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