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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고 한달 만에 흑자 난 선술집, 비결 보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29)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외식업 신규사업자 대비 폐업신고 비율이 10년 넘게 90%를 웃돌고 있다. 10곳이 새로 문을 열면 9곳 이상이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한 가지 분석 결과가 눈길을 끈다. 바로 창업준비 기간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의 ‘2015년 외식업창폐업분석현황’에 따르면 신규사업자의 55%가 창업준비에 6개월 미만의 시간을 들였다. 적절한 기간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짧은 준비 기간이 높은 폐업비율의 한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신규사업자의 55%, 창업준비 기간 6개월 미만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에 꽂히면 남들은 다 실패해도 자신은 성공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혀 속전속결로 승부를 거는 사람이 많다. 이에 반해 창업준비에 20년 가까운 세월을 투자한 이도 있다. 지난 1월 을지로에 문을 열어 ‘안주가 맛있는 선술집’으로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는 ‘레드스타 미식성(美食星)’의 지상원(49) 대표가 주인공이다.

20년 가까이 준비한 끝에 성공적으로 문을 연 '레드스타 미식성'의 지상원 대표. [사진 이상원]

20년 가까이 준비한 끝에 성공적으로 문을 연 '레드스타 미식성'의 지상원 대표. [사진 이상원]

평범한 대기업 샐러리맨이었던 지 대표에게 누나가 “요리사가 돼 보라”고 제안한 것이 2000년. 누나는 어릴 때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고 먹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 동생이었기에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보라고 용기를 줬다.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봤지만 자신이 없었다. 서른 살에 요리를 배우기 시작해 이미 날고 기는 사람들과 경쟁을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준비를 잘해 외식사업을 해 보자고 결심했다. 외식사업에 도움이 될 회사들을 전전하면서 창업 준비를 해 나갔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레드스타는 언제부터 준비해서 언제 문을 열었나요?
올 1월 15일에 오픈을 했습니다. 이제 7개월 조금 지났네요. 레드스타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6월부터였지만, 외식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00년이었으니까 20년이 다 돼 가는 셈이죠. 대기업인 자동차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퇴사하고 외식업에 도움이 될 것 같은 회사로 이직했어요.
인쇄소 골목 안 빨갛게 불이 켜진 '레드스타' 간판. [사진 이상원]

인쇄소 골목 안 빨갛게 불이 켜진 '레드스타' 간판. [사진 이상원]

어떤 회사로 이직했나요? 외식업 창업을 준비하자는 목적은 달성했나요?
외식 프랜차이즈 본사, 자동차용품 기업에서 운영하는 딤섬 전문 레스토랑 등에 근무했어요. 그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어 이직을 반복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모두 도움이 됐어요. 실수하거나 실패를 했던 경험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지 대표는 직장을 다니면서 휴일과 휴가를 이용해 국내외 유명맛집을 찾아 음식을 먹어보고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며 사진을 찍고 메모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을 자주 찾으면서 자료수집을 많이 했다. 여행하면서 미래도 준비한다는 생각에 별로 힘들지 않았다. 이때 맺은 인연이 나중에 창업을 실행할 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근무했던 회사 중 창업에 가장 도움이 된 회사가 있었나요? 어떤 점이 도움됐는지.
샘표 홍보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의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 문화를 국내외 셰프들에게 알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가장 큰 도움을 줬어요. 음식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기회가 됐을 뿐만 아니라 유명 셰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거든요.
레드스타 내부 모습. [사진 이상원]

레드스타 내부 모습. [사진 이상원]

너무 섣불리 창업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치게 오랜 시간 준비한 것은 아닌가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그냥 ‘이거다!’ 하는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이만큼 준비했으니 그냥 문을 열자고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처음부터 디데이를 정하지 않고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하는 여유를 가진 것이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급하게 마음먹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아직도 문 안 열었어”, “언제 문 열어”라는 지인들의 질문에 “그림이 안 그려져서”라는 대답을 계속 반복했어요. 실패가 겁이 난 것도 사실이죠.
작년 여름엔 어떤 계기로 ‘그림’이 그려지고 확신이 들었나요?
운이 좋았어요. 샘표에서 장 프로젝트를 하던 2012년 초 박찬일 셰프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선배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외식사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알리며 고민 상담도 하고 그랬죠. 작년 여름 술 한잔하면서 ‘의외로 안주가 맛있는 선술집 같은 데가 없다’는 화제로 얘기를 나누다가 박 셰프가 “내가 메뉴컨설팅을 해 줄 테니 한번 해 봐라”고 했어요. 순간, ‘이거다!’ 하고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박찬일 셰프에게 어떤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했는지 물어봤다. “믿음이 가는 친구였어요. 무엇보다 ‘맛’을 안다는 게 중요했죠. 음식점 술집의 핵심은 맛인데, 맛을 모르는 사람이 경영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거기다 술집은 기운과 공기가 좋아야 해요. 고객의 심리에 호소하는 거죠. 그걸 이해하는 친구예요.”

창업 비용은 1억3000만원, 오픈 첫 달 빼고 흑자

문을 열기까지 준비과정을 구체적으로 말해 주세요. 괜찮다면 비용에 관해서도요. 누군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있잖아요. 
3개월 동안 을지로 골목을 누비며 30~40군데 가게를 살펴봤어요. 을지로 노포(오래된 가게)처럼 식사하고 가볍게 2차로 한잔할 수 있는 곳, 낮에는 주변의 인쇄소 등으로 시끄럽다가 밤이 되면 빨간 간판에 불이 들어오며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곳 등을 컨셉으로 잡고 알아봤지만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롭고 적당한 데가 없더라고요. 고생고생해 지금의 장소를 찾을 수 있었죠. 비용은 보증금 3000만 원, 인테리어 7000만 원, 집기 3000만 원 등 총 1억30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레드스타 공사 전과 후의 모습. [사진 이상원]

레드스타 공사 전과 후의 모습. [사진 이상원]

을지로 하면 인쇄소 골목이 먼저 떠오른다. 근처 직장인들에게는 ‘퇴근 후 한 잔’ 하기 좋은 골뱅이 골목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을지로의 늦은 오후, 근처의 인쇄소들이 문을 닫으면 골목 안 빨간 별 간판에 불이 켜진다. 레드스타는 근처 직장인들뿐 아니라 맛집 투어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안주가 맛있는 술집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지 꽤 됐다.

문을 연 이후 장사는 잘되는지. 수지는 맞나요?
오픈 한 첫 달을 제외하고 적자는 보는 달은 없어요. 직장 다닐 때보다는 수입이 조금 나은 정도고요. 무척 겁이 난 것이 사실인데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골들이 점점 늘고 있어 앞으로 조금 더 기대된다는 것도 다행이고요. 저희 가게의 자랑거리가 ‘오늘의 메뉴’인데요, 가격을 묻지 않고 주문하는 고객이 많습니다. 가격이 비싸지 않다, 비싸도 먹을 만하다고 칭찬하는 단골들이죠. ‘안주가 맛있는 술집’을 만들자는 목표는 달성한 것 같아요. 
레드스타의 대표적인 인기메뉴 '닭다리 정육 비장탄 구이'와 숯불에 굽는 모습. [사진 이상원]

레드스타의 대표적인 인기메뉴 '닭다리 정육 비장탄 구이'와 숯불에 굽는 모습. [사진 이상원]

창업, 특히 외식업 창업을 준비 중인 분들께 꼭 한마디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스스로 생각해도 지나치다 느껴질 만큼, 주위로부터 왜 그렇게 겁이 많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발품 팔고, 자료 수집하고, 묻고, 듣고 하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맞다 틀리다를 떠나 저는 그렇게 했고 지금 후회하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꿈과 계획에 대해 말해 주세요.
거창한 건 없어요. 일단 레드스타 잘 운영해 ‘안주가 맛있는 술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고 싶어요.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이전에 회사 다니면서 배웠던 장 문화, 글로벌 식문화 등을 접목해 새로운 식문화를 선보일 수 있는 독특한 컨셉의 술집, 식당을 열고 싶어요. 경험이 생겼으니 다시 하나 오픈하는 데 20년씩이나 걸리지는 않겠지요.

레드스타의 안주는 지 대표가 자랑할 만했다. 안주보다는 요리라고 불러야 어울릴 것 같았다. 요리 못지않게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가 서비스로 내 준 한 잔의 술이었다. 나무상자에 잔을 받쳐 내주는데, 상자 바닥에 술이 고여 있는 것이 특이했다. “넉넉히 대접하고 싶은 주인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넘치게 따른 술입니다. 잔의 술을 다 드신 뒤에 마시면 나무 향이 느껴질 겁니다. 항상 향기 나는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주인의 넉넉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넘치게 따랐다는 술. 바닥에 고인 술에 배인 나무향이 주인의 마음을 은은하게 전해주는 것 같다. [사진 이상원]

주인의 넉넉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넘치게 따랐다는 술. 바닥에 고인 술에 배인 나무향이 주인의 마음을 은은하게 전해주는 것 같다. [사진 이상원]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 저자 jycy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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