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에듀]인문학 대가 최진석 교수 “한국, 교육에 대한 상상력 완전 고갈”

중앙일보

입력 2018.09.07 10:00

서울 북촌의 건명원에서 인터뷰중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서울 북촌의 건명원에서 인터뷰중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열심히 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좀처럼 성과가 없거나 앞으로의 방향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한국의 대학입시제도가 꼭 그렇다. 얼마 전 발표 된 2022년 대입 개편안도 그간의 주장을 어정쩡하게 절충해 놓은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중진국 수준 인재 많지만 없는 길 열 인재 부족”
“창의를 가르친다고 되나. 학생 스스로 고유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야”
“부모가 원하는 ‘좋은 것’, 과연 미래에도 좋은 것일까”

 가진 건 사람밖에 없고, 교육열도 높은데 한국의 교육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걸까. 이럴 때는 좀 더 근본적 질문이 필요할 수도 있다.
 철학자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건명원(建明苑)’에서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한국의 ‘인문학 바람’을 이끄는 대표 학자로 꼽힌다. 그가 원장을 맡은 건명원 역시 ‘창의적 리더와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세워진 새로운 형태의 인문·과학·예술 교육기관이다.

-대입제도가 다시 논란이다. 뭐가 문제일까.
“3개월간 온 나라가 공청회를 열고 논의를 했는데 기껏 나온 것이 정시와 수시 비율인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상상력이 완전히 고갈된 것 같다. ‘교육이 무엇인가’, 교육의 목적 자체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그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한 나라가 돌아가려면 정치와 교육, 두 톱니바퀴가 필요하다. 어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정치를 하는가다. 정치하는 사람을 공급해주는 게 교육이니, 교육은 나라를 움직이는 근본 문제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상황은 우리나라 교육이 만들어 낸 결과다.”

-예를 들자면.
“한국은 벌써 몇 년째 선진국의 기준인 국민소득 3만 달러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벽을 넘을 인재가 준비돼 있지 않았던 거다. 미래는 시간이 열어주는 게 아니라 인재가 여는 거다.”

-한국엔 인재가 많지 않나.
“사람이 똑똑하다. 그래서 건국-산업화-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런데 이제 민주화 다음을 노릴 똑똑함이 필요하다. 중진국까지는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면 됐고, 그렇게 잘 따라 할 인재 배양에는 성공했다. 반면 없는 길을 열어야 할 인재가 준비되지 않았다.”

-그게 교육의 탓이라고 보나.

“우리나라는 교육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가 아니라 백년이전지대계(百年以前之大計)다. 과거형 교육이란 얘기다. 우리나라 사람은 질문이 아니라 대답에 익숙하게 적응됐다. 이미 있는 지식을 가지고 누가 빨리, 누가 원래 모습 그대로 뱉어내느냐만 따진다. 철저히 과거를 사는 사회가 된 거다.”

-과거의 지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원래의 모습을 중시하다 보니 시선이 과거를 향하게 된다. 게다가 원래의 모습이 기준으로 작용하면서 거기에 맞으면 참, 맞지 않으면 거짓으로 판명해 모든 논쟁을 과거 논쟁과 선악 논쟁, 진위논쟁으로 끌고 간다.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결과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우리 사회도 창의적인 인재를 강조하고 있다.

“맞다. 그런데 ‘창의’란 게 창의를 주제로 교육해서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의는 내가 ‘우리’ 속의 한 사람으로 녹아있는 게 아니라 내가 고유한 나로 존재하는 용기와 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창의는 호기심의 결과인데 호기심은 바로 그 한 사람에게만 있는 고유함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가 이 세계의 고유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쪽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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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면.
“글을 많이 쓰게 하고, 운동을 많이 하게 하고, 낭송하고 연극을 하고 이런 자발성을 키우는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 이런 것은 자신을 알고 발견하게 한다. 글쓰기의 경우 논술고사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글을 쓰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위한 글쓰기여야 한다. 독서는 ‘지루한 독서’를 권장한다. 예를 들어 길고 해석이 어려운 고전을 읽어내는 내공이 큰 도움이 된다. 책 속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자기 자신이 길이 되는 거다.”

-학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자녀에게 좋은 것만 하게 하면 안 된다. 그 좋은 것이란 게 사실 과거에 좋은 것이다. 미래에 좋은 것은 자녀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부모가 교육의 주체고, 교육의 중심 무대가 가정인 만큼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무엇을 좋아하느냐, 어떨 때 제일 행복한가, 이런 것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몇점 맞았니, 학원은 갔다 왔니, 이번에는 성적을 몇점까지 올려보자 이런 얘기가 주가 되고 있다. 당장 성적이나 입시가 중요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면 안 된다. 정말 성숙한 부모라면 더 멀리 있는 것, 더 큰 것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국가 차라리 교육에서 손을 떼는 게 어떨까. 수학능력시험처럼 기초 학력을 검증하는 제도를 하나 놔두고 대학에 맡겨야 한다. 이제 국가가 어떤 것도 일률적으로 할 수가 없다. 공청회까지 해서 나온 입시 개편안이 정시 비중 몇 %, 수시 비중 몇 %…이런 수준이라면 이게 백년지대계를 논하는 부서인가.”

-어쨌든 교육 제도가 중요하지 않나.
“흔히 제도를 바꾸면 교육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어떤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 즉 철학이나 비전, 삶의 방향이나 꿈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제도 싸움만 있고 가치 싸움이 없다. 아인슈타인은 ‘똑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했다. 우리는 계속 같은 방법만 쓰고 있다.”

-정부는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의미인가.
“선진국은 지금까지 없는 새로운 판,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나라다. 남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그 장르를 채우면서 살면 평생 중진국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제 정시 수시 비중 같은 지엽적인 제도에 연연하지 말고 ‘국가의 비전’을 그려야 한다. 건국-산업화-민주화 이런 큰 목적이자 비전 말이다.”

-다른 나라는 비전이란 게 있나.
“옳고 그름을 떠나 미국은 ‘위대한 아메리카’, 중국은 ‘중국몽(中國夢)’, 일본은 ‘보통 국가’를 내세웠다. 이런 게 국가가 할 일이다. 반면 우리는 ‘민주화’ 이후엔 사실상 국가가 내놓은 비전이 없다.”

-어떤 교육이 강화돼야 커다란 비전이 생길 수 있을까.
“수학·예술·물리학·문학·철학 등 시대의 변화를 감지해 한 단계 높은 시선으로 포착해 낼 수 있는 학문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수학자는 ‘수(數)’로, 철학자는 ‘관념’으로 압축해서 세상에 다른 흐름을 제공하거나 세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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