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장세정의 직격 인터뷰

"손흥민 병역특례로 110억 수입···외국선 일부 환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국위선양 개념 달라져···'방탄' 병역특례는 시대정신
병역제도 전문가 김일생 전 병무청장 

병역특례제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42명이 금메달을 따고 병역특례(축구 20명, 야구 9명 등)를 받게 되면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73년 처음 도입된 병역특례 제도가 45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면서 제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초기에는 국익과 국위선양에 기여한 스포츠 선수와 문화예술인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던 국민도 이제는 형평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몇몇 야구 선수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기찬수 병무청장은 "병역특례제도를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며 제도 손질 가능성을 내비쳤다. 결국 청와대와 국회 등이 국민의 목소리를 어떻게든 반영해 제도를 손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병역특례제도 전문가인 김일생(66) 전 병무청장(2012년 5월~2013년 3월)을 만나 이번 논란의 배경과 제도 개선 방향 등에 대해 들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금메달을 깨물고 있다. [뉴스1]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금메달을 깨물고 있다. [뉴스1]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병역특례제도가 논란을 빚었다. '로또' '한탕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도가 희화화되는 분위기다.

1973년 도입한 병역특례제도 #시대변화에 맞게 ‘재건축’해야 #체육 종목과 예술 장르만으로 #국위선양과 국익 평가 안 돼 #한국사회 엘리트 카르텔 깨야 #공정성과 형평성이 대원칙 #병역특례 기간 중 얻은 영리 #기부·환수하는 제도화 필요

"선발 과정의 공정성이 문제가 됐다. 또 종목에 따라 국위선양의 무게에도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에 4개국이 출전했다. 대만과 중국을 제외하면 결국 한국과 일본이 금메달을 놓고 다퉜다. 자기들(야구인)끼리의 국위선양이 돼버렸다. 그마저도 오지환·박해민 등 선수 선발에 잡음이 있었다. 축구 손흥민은 큰 문제가 없었다."

병역특례 논란을 부른 박해민(왼쪽)과 오지환이 타격 훈련을 하며 땀을 흘리고 있다. [일간스포츠]

병역특례 논란을 부른 박해민(왼쪽)과 오지환이 타격 훈련을 하며 땀을 흘리고 있다. [일간스포츠]

-축구의 경우도 김학범 감독이 황의조 선수를 발탁하자 '인맥 축구'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 사회에 '엘리트 카르텔'이 있다. 가장 상위의 부정·부패 형태가 엘리트 카르텔이다. 옛날처럼 밑에서 돈 받아먹고 봐주는 놈이 명확한 형태와는 다르다. 엘리트 카르텔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공정한 것 같은데 그들만의 '이너 서클(Inner circle)'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예 기회가 없다. 이 부분은 우리가 뚫고 나가야 할 형평성·공정성의 문제다. 체육계와 문화예술계의 엘리트 카르텔을 넘어서지 못하면 계속해서 시비가 생길 것이다. 이 문제는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면 바로 없어질 문제인데 모병제 전환이 말만큼 쉽지 않다."

김일생 전 병무청장은 시대변화에 맞게 병역특례제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우상조 기자

김일생 전 병무청장은 시대변화에 맞게 병역특례제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우상조 기자

-모병제 도입 이전에는 어떻게 하나.

"사회 발전 추세에 따르면 모병제로 가게 돼 있다. 하지만 한국의 안보 여건과 경제 상황을 보면 아직은 시기상조다. 병역특례 문제의 답은 모병제인데 모병제로 가기 어려우니 개혁이 필요하다. 엘리트 카르텔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언론이 사회감시 기능을 적극적으로 해줘야 한다. 사명감 있는 기자들이 추적해서 보도하고 판단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 공정성에 위배되면 파멸에 이르도록 하는 사회적 응징체계가 따라야 한다."

-'국위선양'의 기준도 모호하다. 음악 한류의 대표 주자인 방탄소년단이 기여한 국위선양의 가치가 금메달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나.

"국위선양은 궁극적으로 국익이다. 국위선양이 되면 국가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 한류라든지 대중문화는 국익과 직결된다. 현재 국민 정서로 봐서는 국위선양과 국익에 직결되니 방탄소년단도 병역특례 대상에 넣어줘야 한다고 본다. 그게 달라진 시대정신이다."

클래식에 비해 대중음악 분야가 병역특례에서 차별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방탄소년단.

클래식에 비해 대중음악 분야가 병역특례에서 차별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방탄소년단.

-최근 10년간 병역특례를 받은 숫자를 보니 문화예술계가 270명, 스포츠계는 170명이다. 문화예술계가 더 혜택을 본 것 아닌가.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열리지만 문화예술 행사는 매년 열린다. 그러니 매년 하나씩은 나오고, 또 국제콩쿠르가 매년 또는 2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 국제대회는 2등까지, 국내대회는 1등까지 병역특례를 준다. 국제대회라고 하지만 사실상 한국 대회인 것도 있다. 서울에서 열려 한국 사람끼리의 리그이고, 외국 사람은 몇 명 참석 안 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선 방안을 심사숙고할 것이다."

-같은 문화예술계를 보더라도 클래식과 대중예술을 병역특례에서 차별하고 있다.

"클래식과 대중문화의 중간 부분에 있는 융합적 예술 장르도 있다. 국가이익과 국위선양의 차원에서 보면 대중예술이 더 세계적인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이제는 단순히 장르로 가치를 논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본다."

2016년도 첫 징병검사에서 현역입영 대상 판정을 받은 청년들이 활짝 웃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도 첫 징병검사에서 현역입영 대상 판정을 받은 청년들이 활짝 웃고 있다. [중앙포토]

-현행 병역제도의 대원칙은 뭔가.

"첫째, 병역의 의무는 국방·안보의 시동을 걸어주는 키(열쇠)다. 이게 없으면 국방·안보가 시작이 안 된다. 둘째는 형평성이다. 헌법 39조 1항에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헌법의 하위법령인 병역법에 남성에게(여성은 지원해 복무 가능) 병역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 39조 2항에는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한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형평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돈 없고 빽 없으니 군대 간다는 인식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복무가 자부심을 갖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

-금메달 하나 땄다고 한방에 병역 면제해 주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지 않나.

"정확히 말하면 병역 면제가 아니라 현역복무를 면제해주는 거다. 흔히 대체복무와 사회복무를 헷갈리는데, 병역특례는 사회복무 속 공익근무 형태다. 기초 군사교육을 4주간 받고 각자 해당 분야에서 34개월 복무(체육선수의 경우 체육선수나 지도자, 피아노 연주자의 경우 피아노 연주)해야 병역이 면제된다. 이들은 예비군 훈련도 받고, 전시에 소집돼 현역 복무도 한다. 이게 어떻게 면제인가. 면제는 기초훈련조차 받지 않는다. 속칭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하는 대체복무는 기초군사훈련을 받지 않는 대신 실형을 살게 된다."

2012년 청장 재직 당시 공정한 병역이행 캠페인에 나선 김일생 전 병무청장.[중앙포토]

2012년 청장 재직 당시 공정한 병역이행 캠페인에 나선 김일생 전 병무청장.[중앙포토]

-그렇다면 병역특례를 주는 제도적·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사람은 연령에 따라 육체적·정신적 기량이 폭발적으로 향상되는 분야가 있다. 예를 들어 수영은 18~22세 사이다. 평균 22세에 군대에 가는데,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2년을 보내면 그대로 끝나버린다. 반면 예술 분야 중 군악대는 군대에 들어가서도 계속할 수 있다. 이런 차이를 잘 고려해 병역특례 분야를 정해야 한다. 병역특례는 1년에 많아도 100명 미만이다. 이 정도 숫자는 정서상의 문제이지 국방인력 충원에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연간 1000명 가까이 되니 훨씬 더 많다."

2017년 첫 징병검사가 진행 서울지방병무청 병역판정검사장에서 혈액검사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2017년 첫 징병검사가 진행 서울지방병무청 병역판정검사장에서 혈액검사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병역특례제도는 7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도입됐다. 전두환 정부 때인 83년, 김영삼 정부 때인 93년에 적용 대상과 범위를 각각 손질했다. 시대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제도가 오락가락하기도 했다.

-73년 도입된 병역특례제도는 세월이 흐르면서 취지가 왜곡되고 변질했다. 꼬리(예외)가 몸통(원칙)을 뒤흔들고 있지 않나.

"문화체육 예술 요원 병역특례를 인정받기 위해 이익단체들이 엄청나게 뛰어다닌다. 각 이익단체의 로비가 워낙 심하니 입법부인 국회가 휘둘리고, 전담부서인 문광부에서 단체의 요구를 들어주고 병무청으로 넘어온다. 병무청에 탄원서도 들어온다. 이것이 국민 의견수렴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졌는데 결국 지금처럼 제도가 복잡하게 됐다. 제도 개선 필요성은 병무청 직원들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정치적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병무청은 제도 개선의 동력을 잃어버린다. 관련 이익단체들이 국회 상임위원회에 모두 관여해 있기 때문에 입법화까지 가기에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모병제로 전환하기 전에는 완벽한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김일생 전 병무청장은 4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병역특례제도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상조 기자

김일생 전 병무청장은 4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병역특례제도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상조 기자

-병역특례제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많이 변하고 있다.
"70년대에는 복무 기간이 33개월이었고 병역자원이 많이 남아돌았다. 당시 1년에 남자만 60만명이 출생했는데 당시 군 수요는 20만~23만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병역면제를 해줘도 면제자를 제외한 30%가 현역에 못 갈 때였다. 당시 체육선수들에게 병역특례를 주는 데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엘리트 체육이 아니라 생활체육을 통한 국민건강증진이 체육의 목표다. 게다가 병역자원도 급감했다. 2025년이 되면 가용자원이 22만명뿐이다. 현재는 24만명 필요한데 지금도 모자라는 실정이다. 앞으로 군 감축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복무 기간을 단축하면 병력이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적 정신은 형평성과 공정성이다. 이에 맞게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손질해야 하나.
"73년 제도 도입 이후 83년과 93년에 했던 것처럼 기존 정책을 일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전면적으로 포맷해서 목적·정의·공평성에 방점을 두고 제로베이스(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해야 한다. 국가 체육의 목적, 국위선양의 기준, 병역자원 부족 등 현재 상황을 고려해 재설계해야 한다. 국위선양의 기준과 국익 기여도를 재정립하고, 그에 걸맞은 개인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한다. 군 복무가 기량 저하와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 종목은 가려내야 한다."

현행 병역특례제도에 따르면 손흥민의 경우 4주 기초군사 훈련과 특기 분야 34개월 활동, 544시간 특기 봉사활동(해외 활동자는 기간의 절반)을 해야 병역의무 이행으로 간주한다.

2018년 새해 첫 입영행사가 열린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신병들이 거수 경례하는 모습. [중앙포토]

2018년 새해 첫 입영행사가 열린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신병들이 거수 경례하는 모습. [중앙포토]

-병역특례자들의 사후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문화체육 예술 요원 중 음악 쪽을 보면 병역특례를 받고 대학에 다니고 개인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문광부는 이런 것도 재능기부라고 인정해준다. 신뢰도에 의문이 가는 이런 복무관리를 손볼 때가 됐다. 영리 활동하는 것도 문제다. 체육문화예술 요원들이 영리활동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제재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손흥민 선수의 경우 평균 주급이 1억원이 넘고 (군 복무 2년간 수입은 110억원 추정되고) 광고 수입 등을 추가로 받는다. 외국에서는 병역특례 기간 중 영리활동으로 거둔 이익의 일정 금액 이상을 환수하게 돼 있다. 병역특례 기간에 영리 활동으로 거둔 이익에 대해 적절한 기부나 환수를 하면 오히려 당사자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

-성적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누적해서 평가하는 마일리지제도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금메달 하나 따고 끝내는 건 아무래도 문제다. 현재 체육연금제도의 경우 점수를 누적해서 연금을 주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을 한 번 따면 90점, 아시안게임 금 10점, 유니버시아드와 군인체육대회 금 10점, 세계선수권대회는 금 20~45점이다. 병역특례를 체육연금 받는 사람에게 준다고 규정하면 모두 해결된다. 병무청이 ‘체육연금 자격 충족자에게 병역특례를 준다’고 제도만 바꾸면 된다. 이렇게 하면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줄 수 있다."

김일생 전 병무청장(오른쪽)이 1급 현역 판정을 받은 이광락(19)군을 격려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일생 전 병무청장(오른쪽)이 1급 현역 판정을 받은 이광락(19)군을 격려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정리=김혜원 인턴기자

관련기사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김혜원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영상편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