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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탐구] 만년서생? 폭탄주 21잔 들이킨 승부사 김병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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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3일 당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 출연했다. [사진 오른소리 유튜브 캡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3일 당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 출연했다. [사진 오른소리 유튜브 캡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리더로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 30대 넘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학자로 보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정책통으로 중책을 맡았지만 참모의 역할을 벗어나진 못했다. 교육부 수장에서는 13일만에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 말미에 국무총리로 지명됐지만 임명되진 못했다. 김 위원장의 리더십은 사실상 한국당에서 첫 시험무대에 오른 셈이다.

합리적이나 스킨십은 부족

김 위원장은 최근 한국당 상임위별 의원 만찬 때 폭탄주 21잔을 연거푸 들이키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아 동석한 의원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평소 술을 즐기거나 모임을 주도하는 모습을 아무도 본적이 없었던 탓이다. 김용태 당 사무총장은 “김 위원장이 술을 즐기진 않지만 승부욕이 있어서 마셨을 것”이라 말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주변 사람들과 호형호제 하면서 교류가 활발한 스타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요직에 있었지만 당시 인사들 사이에서도 적게 거론되는 편이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 딱 2번 등장한다. 이해찬(20회), 한명숙(7회), 정동영(15회) 같은 다른 주요 인사들보다 등장횟수가 현저히 적다.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에도 그는 딱 두 차례만 등장했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학자 출신이라 샤이한 건지 당내 스킨십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신임 김병준 교육부총리와 장병완 기획예산처장관에 대한 임명장을 수여한후 환담장으로 이동 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신임 김병준 교육부총리와 장병완 기획예산처장관에 대한 임명장을 수여한후 환담장으로 이동 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 위원장이 합리적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강하게 밀어붙인다는 평가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업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건 김 위원장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산업비서관이었던 이현재 한국당 의원은 “‘내가 가는 게 무슨 독려가 되냐’며 노 대통령이 끝까지 안가려 했다. 여러 경로로 아무리 얘기를 해도 요지부동이었다”며 “그런데 김병준 실장이 얘기하니까 결국 참석했다. 김 실장이 강하게 얘기를 한 걸로 안다”고 회고했다.

박명재 한국당 의원(당시 행정자치부 장관)도 “노무현 정부 초기 지방분권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 실장이 관계부처 이견을 조정에 합리적으로 대응한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도 큰 원칙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며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과 맞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 위원장은 학자 출신 답게 자기 저서에서 다소 현학적인 표현을 따오곤 한다. 최근 통계청장 교체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지칭했던 게 대표적이다. 이 표현은 김 위원장의 저서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의 첫 번째 소제목이다.

지난달 한국당 의원 연찬회에서 “한국당은 고장난 자동차”라며 “운전수를 바꾸는 일(인적청산)이 급한 게 아니다”라 말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의 책 『대통령 권력』의 마지막 챕터 소제목은 ‘고장난 자동차, 누가 운전한들…’이다. “국가운영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대통령을 바꿔봤자 별로 달라지는 게 없다”는 주장을 담았다. 의원 연찬회 때 했던 발언과 취지가 거의 비슷하다.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 김병준 비대위원장, 김성태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 김병준 비대위원장, 김성태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살벌한 정치판에서 통할까

김 위원장의 학자적ㆍ이론적 성향이 권력 다툼이 노골적인 여의도 정치에서 먹힐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의 말을 두고 “어휘 선택을 단순하게 하지 않고 가치나 철학 묻어 있다. 약한 고리 잘 짚어내는 느낌”(김찬석 전 한국PR학회 회장)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결국 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기존 세력들에게 ‘엎어치기’ 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당의 한 4선 의원은 “관리하러 왔으면 빨리 나갈 생각해야지 펀더멘털 바꾼다면서 시간 끌고 딴 생각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경북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결국에는 지지율 같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야 당내 반발 세력들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한영익·성지원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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