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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 “펀드 손해 많아 안타깝지만 … 묻어둔 셈 치고 기다리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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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가 30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장기 투자를 하면 반드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연 기자]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가 30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장기 투자를 하면 반드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연 기자]

자산운용업계는 원래 흥망성쇠의 순환 속도가 매우 빠른 곳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만큼 영욕이 빠르게 뒤바뀐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는 한때 ‘존 리 펀드’ 열풍과 함께 한국 자산운용시장의 판도를 뒤바꿨던 주역이었다.  2013년 7월 설정된 메리츠코리아펀드는 한국 자산운용업계가 만들어낸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였다. 이 펀드는 2014년 14.84%, 2015년 상반기 3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달성하면서 1조원이 넘는 시중 자금을 빨아들였다.

영욕의 메리츠운용 대표 인터뷰 #손해 본 투자자는 상승기 때 들어와 #좋은 주식이라면 장기적으로 상승 #노후 대비 투자, 30년은 묻어놔야 #돈 벌 욕심 감추느라 금융교육 외면 #차는 가난의 지름길 … 당장 팔아라

하지만 2015년 하반기부터 드라마틱하게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그해 하반기 -6.66%의 수익률을 기록한 데 이어 2016년에는 -22.65%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2017년 수익률이 16.88%로 회복되긴 했지만, 아직도 원금을 회복하지 못한 투자자가 수두룩하다. 5일 기준 이 펀드의 3년 수익률은 -15.51%. 리 대표는 이 때문에 인터넷 투자카페 등에서 ‘사기꾼’이라는 험한 말까지 듣는 처지가 됐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30일 그를 만나자마자 대뜸 “도대체 언제쯤 펀드 투자자가 원금이라도 회복될 수 있겠느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리 대표의 첫 반응은 깊은 한숨이었다. 이어 “손해를 보고 있는 투자자들은 펀드가 가장 많이 상승했을 때 들어온 분들이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나를 믿어 달라. 나중에는 분명히 수익률이 200%에 이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리츠코리아펀드에 투자했다가 폭락하는 바람에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많다. 언제쯤 원금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안타깝다. 손해를 본 투자자는 펀드가 크게 상승했을 때 들어온 분들이다. 처음부터 들어왔거나 최근에 들어온 투자자들은 돈을 벌었다. 시점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펀드가 투자한 회사들은 돈을 잘 벌고 있다. 내가 믿는 구석이다. 매출이 10% 넘게 올라가고 있고 이익도 늘어나고 있다. 손실을 보고 있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중에는 수익률이 50%, 100%, 200%가 될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의 원리다.”

리 대표는 ‘장기 투자 전도사’로 불린다. 그만큼 장기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 역시 ‘펀드에 묻어두고 잊어버리기’였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싶으면 카지노에 가라”는 게 그의 말이다. 주식과 펀드 투자는 ‘노후 대비’를 위한 것이라는 소신 때문이다.

지금처럼 장이 좋지 않을 때도 주식에 투자해야 하나.
“주식투자의 목표는 딱 한 가지, ‘노후 대비’다. 장이 안 좋으면 주식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오히려 도움이 된다. 지금 사서 묻어두고 20~30년 후에 찾을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단기 등락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기업의 주식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92%의 퇴직연금이 원금보장형이다. 내가 돈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돈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해야 한다.”
노후 준비 자금이라면 더더욱 안정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금융교육을 안 받아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 좋은 주식이나 펀드는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좋은 회사의 주식이 20년을 기다려도 오르지 않는다면 그 나라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다. 물론 전제 조건은 투자 대상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동산을 살 때처럼 주식을 살 때도 연구해야 한다. 부동산은 20년 이상 가진 경우도 많은데 만약 주식을 같은 기간 갖고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이 벌었을 거다. 미국 부자들은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11~12% 정도지만 한국은 80%가 넘는다. 분산 투자해야 한다. 집은 주거 대상일 뿐 투자 대상으로는 매력적이지 않다.”

리 대표는 이런 내용의 금융투자 설명회를 전국 각지에서 열고 있다. 하지만 학생 대상의 설명회는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학교 현장 교육을 많이 한다고 하던데.
“엄청나게 많이 하는데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한 지방 초등학교 교사가 강연을 부탁해 흔쾌히 가겠다고 했는데 어제 갑자기 전화가 와서 ‘너무 미안한데 취소해야겠다’고 하더라. 교장 선생님이 ‘애들한테 돈 가르치면 안 된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미국은 장난감 회사에서 아이들한테도 주식을 판다. 디즈니 인형도 팔지만, 디즈니 주식도 파는 거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디즈니랜드 놀러 갈래, 디즈니랜드에 투자할래?’ 어릴 때부터 자본이라는 걸 교육 한다.”

리 대표는 그러면서 부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 “부자 되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부자 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나라. 부자가 되고 싶으면서도 속으로 감추는 나라. 부자가 되는 길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멀리 돌아가는 나라. 부자처럼 보이려고 꾸미느라 가난해지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해외 시장에서 한국은 더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장점은 ▶높은 저축률 ▶젊은이들의 성공 의지 ▶밤새워 일해도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화 ▶국가 전체가 잘 되길 바라는 국민성 등이었다. 하지만 점점 일본을 닮아가는 걸 보고 많이들 실망하고 있다. 모두가 공무원 되길 원하고 모든 것을 시험으로 해결하려는 문화, 창업하려 하지 않는 문화가 그렇다. 한국처럼 여성이 공부를 많이 한 곳이 없는데도 여전히 여성이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금융도 경직돼 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젊은이의 창업정신 ▶여성의 적극적 사회참여 ▶금융교육이다.”
마지막으로 투자자에게 강조하고 싶은 건.
“당장 차를 팔고, 사교육비 지출을 중단해야 한다. 차는 소유자를 가난하게 만드는 데 급속도로 기여한다. 아이들은 오후 3시부터는 놀아야 모험가로 성장한다. 그리고는 월급의 10%를 주식형 펀드에 넣은 뒤 60대가 될 때까지 펀드의 존재를 잊어버려라.” 

◆존 리

미국 뉴욕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KPMG 회계사로 금융계에 발을 내디뎠다. 미국 스커더인베스트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 업무를 맡았고, 이후 도이치투자신탁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와 라자드자산운용 매니징 디렉터 등을 거쳤다. 2014년부터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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