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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든 미국인, 정치참여율 높아 총기 규제 입법 지연"...美 캔자스대 연구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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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성탄절을 열흘 여 앞둔 2012년 12월 14일 오전 9시40분. 미국 코네티컷 뉴타운에 있는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연달아 총성이 울렸다. 범인은 이 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낸시 랜자의 아들 애덤 랜자였다.

그는 자택에서 어머니를 숨지게 한 후, 학교에도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해 방어능력이 전혀 없던 6~7세의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사건 이전까지 10년간 사망사건이 단 한 건에 불과했던 조용한 마을 뉴타운을 비롯해 미국 전역은 큰 충격에 빠졌다.

지난 2015년 10월 미국 오리건 주의 엄콰 커뮤니티 대학(Umpqua Community College)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최소 10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미국 내 총기로 인한 사망사고는 한 해 1만 건을 훌쩍 넘고 있지만,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은 입법이 미진한 상황이다. 사진은 해당 대학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2015년 10월 미국 오리건 주의 엄콰 커뮤니티 대학(Umpqua Community College)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최소 10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미국 내 총기로 인한 사망사고는 한 해 1만 건을 훌쩍 넘고 있지만,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은 입법이 미진한 상황이다. 사진은 해당 대학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미국의 총기 관련 비영리단체인 '건바이올런스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만5549명에 달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는 제외한 수치다. 지난달 27일 플로리다 잭슨빌에서도 최소 4명이 숨지는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미국 내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치권에서의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美 캔자스대 연구진, "총기소지자 정치참여도 높다"...총기규제법안 통과 어려운 요인 

이런 가운데 미 캔자스대 정치과학부 연구진이 2일(현지시간), '총기 소지와 정치참여 성향'에 관한 연구결과를 제시해 주목된다. 미국 내 총기 소지자들이 비소지자들에 비해 정치참여가 활발하고, 이로 인해 총기 전면 금지 등 규제 법안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연구의 골자다. 연구진은 같은 날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정치학회(APSA)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012년 4월 13일,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미트 롬니(Mitt Romney)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를 대상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한편 캔자스대 정치과학부 연구진은 2일(현지시간) 미국 내 총기 소지자들은 정치참여율이 높아,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은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설이 있었던 2012년 말, 코네티컷 주 뉴타운에서는 총격사건이 발생해 2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AP=연합뉴스]

2012년 4월 13일,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미트 롬니(Mitt Romney)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를 대상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한편 캔자스대 정치과학부 연구진은 2일(현지시간) 미국 내 총기 소지자들은 정치참여율이 높아,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은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설이 있었던 2012년 말, 코네티컷 주 뉴타운에서는 총격사건이 발생해 2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AP=연합뉴스]

연구진은 1972~2012년 사이,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의 총기 소지자들과 비소지자들의 정치참여 행태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총기 소지자들은 단순히 투표율만 높은 것이 아니라, 지지 후보에게 후원금을 기부하고,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직접 접촉하는 등 활발한 정치 참여를 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총기 소유, 폭력성보다 '정치적 정체성'의 상징...NRA 가입자는 20% 불과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2012년 뉴타운 총격사건을 비롯해 대규모 총기 난사사건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총기 규제 법안에 미온적인 것은 총기 소지자들의 높은 정치 참여율이 결정적"이라고 밝혔다. 캔자스대 정치과학부 돈 하이더-마클, 마크 조슬린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한 대학원생 에비 벡터는 "일반적으로 총기규제에 관한 논의는 전미총기협회(NRA)가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로 총기 소지자들 중 20%만이 NRA에 가입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달 4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총기 규제 법안에 찬성하는 한 시민이 NRA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월, 17명의 사상자를 낸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격사건'을 추모하기도 했다. [EPA=연합뉴스]

지난 달 4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총기 규제 법안에 찬성하는 한 시민이 NRA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월, 17명의 사상자를 낸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격사건'을 추모하기도 했다. [EPA=연합뉴스]

그는 총을 소유한다는 것이 단순히 폭력을 선호하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총기 소유 자체보다 '총기 소유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고 보는 정치적 주장이 강하게 반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총기 규제를 강력히 주장했던 특정 정치인들이나 주 정부에 대한 반작용 등으로 정치참여가 활발한 경향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이들 총기 소지자들을 하나의 강력한 사회적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의 보수당은 이를 강하게 인식하고 정치 캠페인에 보다 잘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5일 현재까지 미국 내 총기로 인한 사망자 수는 9869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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