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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에 맞선 죄…나이키 불태우는 미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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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제창 거부 선수 모델 쓴 뒤…곳곳서 나이키 불질 영상 

 유명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가 미국 프로풋볼(NFL) 경기에서 ‘무릎꿇기’ 논란을 일으킨 선수를 광고모델에 선정한 것을 놓고 미국 소셜미디어가 들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나이키를 겨냥해 “끔찍한 메시지였다”고 공개 비난했고, 트럼프 지지자를 비롯한 일부 네티즌들은 나이키 운동화를 태우거나, 욕설이 담긴 자극적인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과격한 나이키 보이콧 운동에 나섰다.
 앞서 지난 3일 나이키는 핵심 슬로건 ‘저스트 두 잇’ 캠페인 30주년 기념 광고 모델에 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 쿼터백 출신 콜린 캐퍼닉을 선정했다. 캐퍼닉은 지난 2016년 8월 경기 중 국가를 제창할 때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는 대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인종 차별에 항의하려는 취지였다. 당시 미 전역에선 경찰의 총격에 흑인 사망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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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4일 보수 인터넷 매체 데일리 콜러와 인터뷰에서 “나이키는 최악의 메시지를 보냈다. 보내면 안됐을 메시지였다”며 “(나이키가) 콜린 캐퍼닉을 모델에 선정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나이키는 내 임차인”이라며 “그들은 (내게) 많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CNN에 따르면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 옆 건물에 입점했던 나이키 플래그십 스토어는 최근 문을 닫았다. 지난해 나이키는 “2018년(올해) 하반기 이 매장이 뉴욕 5번가에 이주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날 트위터·유튜브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는 '#나이키보이콧', '#나이키를태워라' 등 태그가 걸린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왔다. 특히 나이키 운동화를 불태우거나, 나이키 양말을 찢어버리는 식의 동영상을 올려 나이키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나이키 신발을 겨냥해 드론 미사일을 날리는 그래픽 영상도 등장했다. 트윗상에선 “(캐퍼닉 광고모델 기용은) 나이키 역사상 가장 멍청한 행동” 등 비난 메시지도 쏟아졌다.

인터넷매체 복스(VOX)는 “이번 보이콧 운동이 나이키가 보유한 컨버스, 헐리, 콜한 등 다른 브랜드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날 나이키가 ‘정치 리스크’에 휩싸일 것이란 우려에 나이키 주가(S&P500 지수)는 3.2% 하락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기업들의 사회·정치적 입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 기업들이 어떻게 브랜드  포지셔닝을 해야 할지 딜레마에 놓인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나이키의 이같은 ‘포지셔닝 전략’이 장기적으론 빛을 발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PR·마케팅 기업인 MWWPR의 카린 윈터스 수석전략가는 FT와 인터뷰에서 “나이키는 정교한 마케터이며, 고객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고객들은 나이키에 보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이펙스마케팅그룹(AMG)의 분석에 따르면 캐퍼닉 기용 사실이 알려진 4일(미국 동부시간 오전 기준) 나이키는 4300만 달러(480억원)에 달하는 ‘노출 효과’를 누렸다고 FT는 전했다.

지난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무릎을 꿇은 콜린 캐퍼닉(가운데). [AP=연합뉴스]

지난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무릎을 꿇은 콜린 캐퍼닉(가운데). [AP=연합뉴스]

캐퍼닉은 2016년 경기 중 국가 제창을 거부한 것을 놓고 “난 흑인이나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나라의 국기에 자긍심을 보여주기 위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것은 풋볼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여론은 극명히 갈렸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스포츠 팬들은 나라와 국가(國歌)에 자부심을 표하지 않는 선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며 “개XX(Son of Bitch)”라는 욕설까지 쓸 정도였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애국심 없는 선수를 해고하거나 출전시키지 말라”고 구단주들을 압박한 끝에 캐퍼닉은 어느 구단과도 계약하지 못한 채 실직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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