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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모의고사 중 압수수색 당한 숙명여고…"내 딸 입학할까 겁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에서 경찰이 시험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에 들어간 가운데 정문에서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에서 경찰이 시험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에 들어간 가운데 정문에서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시험지 유출의혹'을 받고 있는 숙명여고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70여일 앞두고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의혹' 경찰 본격 수사 #학교는 "시험지 유출될 수 있는 구조 아냐" 반박 #

서울 수서경찰서는 5일 오전 10시부터 숙명여고 교장실과 교무실 등에 압수수색을 하며 "정기고사 문제와 정답 유출 의혹 사건에 관한 자료를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이라고 설명했다.

숙명여고는 교무부장을 역임한 A교사가 지난 학기 나란히 성적이 급상승해 문·이과에서 각각 전교 1등을 한 자신의 쌍둥이 딸에게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후 A교사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학교에 경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친 이날은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험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9월 모의고사가 치러지던 날이었다. 대치동 학원가의 한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시험에 잘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숙명여고는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학교의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숙명여고에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9월 모의고사 중에 압수수색을 시작했다고 들었다"며 "수사도 너무 늦었고 증거도 인멸됐을 것이라 이렇게 그냥 일단락될까 겁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이민종 감사관(오른쪽)과 중등교육과 강연흥 과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숙명여고 교무부장 자녀의 학업성적 관리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및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시험지 유출 의혹에 대해 해당 학교의 교장과 교감, 교무부장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뉴스1]

서울시교육청 이민종 감사관(오른쪽)과 중등교육과 강연흥 과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숙명여고 교무부장 자녀의 학업성적 관리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및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시험지 유출 의혹에 대해 해당 학교의 교장과 교감, 교무부장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뉴스1]

강남 학부모들이 모인 유명 맘 카페에선 "주변에서 내 딸이 숙명여고에 입학할까봐 걱정된다"며 "비리 의혹이 있는 학교에 보낼 바에는 이사를 가겠다고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숙명여고에 대한 압수수색은 지난달 말 '시험지 유출' 의혹이 불거진 뒤 학교의 안일한 대처가 자초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여론의 지탄과 학생·학부모들의 강력한 반발 속에서도 학교는 지난달 29일 발표된 서울시교육청의 특별감사의 재심의를 요구하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학교는 교장과 교감이 학부모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고 입장을 발표하기보다는 학교 게시판에 입장문을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사과 역시도 늦었다.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에서 A교무부장이 자녀 학년 시험 문제의 결재를 맡았다는 결과가 나온 뒤에야 학교는 다음날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쌍둥이 자매가 11개의 시험 문제에서 모두 똑같은 정정 전 정답을 적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두 학생이 함께 정정 전 정답을 기재한 경우는 1학년 때 1번뿐"이라며 "남은 10개 문제에 대해서는 두 학생이 모두 똑같은 정답을 적어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숙명여고 '문제유출의혹' 일지. [연합뉴스]

숙명여고 '문제유출의혹' 일지. [연합뉴스]

서울시교육청이 시험지 평가관리의 공정성 훼손의 책임을 물어 A교무부장과 교장·교감에 대해 중징계 조취를 취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해당 교무부장 단독으로 시험지를 결재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재심의를 요청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이민종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29일 감사결과 발표에서 "조사과정에서 교무부장이 앞서 주장했던 1분보다 더 많은 시간 시험지를 단독으로 검토하고 결재했다는 것을 인정했다"며 "교무실에 폐쇄회로TV(CCTV)가 없어 시험지가 교무부장에게 단독으로 노출된 시간이 최장 50분 정도"라고 설명했다.

숙명여고가 지난달 30일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에 대한 입장문을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숙명여고 홈페이지 캡처]

숙명여고가 지난달 30일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에 대한 입장문을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숙명여고 홈페이지 캡처]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감사 결과만으로는 완전히 의혹을 해소할 수 없다며 사건의 공을 경찰로 넘긴 상태다.

숙명여고 사태가 장기화되며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발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학부모들은 5일째 오후 8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학교 정문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얼굴을 가린 것은 신분이 드러날 경우 자신의 자녀가 내신과 수행평가 전형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숙명여고는 '학교의 명예'를 내세우며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이해와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 숙명여고는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에서 "숙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개선을 위한 의견을 기탄없이 주시고 학교가 기울이는 노력들에 대해서도 많은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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