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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광고판 위 짜릿한 기분 잊을 수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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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4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승우.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하며 한국이 금메달을 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장진영 기자

4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승우.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하며 한국이 금메달을 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장진영 기자

“광고판 위에서 바라보니 관중석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팬들의 표정과 외치는 소리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죠. 축구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였어요.”

아시안게임 우승 주역 단독 인터뷰 #큰 경기 치르며 기량 급성장 #“기성용 형한테는 리더십을, #손흥민 형에게선 집중력 배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연장 전반 3분 골을 터뜨렸던 상황을 설명하던 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당시의 감흥이 되살아난 듯했다. 축구대표팀은 지난 2일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을 연장 접전 끝에 2-1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후반 90분간의 맞대결을 0-0으로 마친 한국이 승기를 잡은 건 이승우의 득점포 덕분이었다. 손흥민(26·토트넘)이 터치라인 부근에서 아크서클 정면으로 드리블하던 볼을 이승우가 뛰어들며 호쾌한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일본의 골망을 흔들었다. 득점 직후 골라인 뒤편 광고판 위로 뛰어오른 이승우는 양손을 귀에 가져다 대고 팬들의 환호를 유도했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치르며 부쩍 성장한 이승우는 아시안컵 우승을 새로운 목표로 정했다.. 장진영 기자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치르며 부쩍 성장한 이승우는 아시안컵 우승을 새로운 목표로 정했다.. 장진영 기자

4일 대표팀 소집에 앞서 이승우를 경기도 일산의 호수공원에서 만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소감을 들어봤다. 이승우는 “아무래도 팬들의 관심은 병역 혜택 쪽에 모아지는 듯한데, 아직 스무살이라 그런지 아직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며 “흥민이 형을 비롯해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 형들이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첫 골을 넣은 뒤 광고판 위로 올라가 세리머니를 한 것은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며 “스터드(축구화 바닥의 돌기) 때문인지 광고판 위가 생각보다 미끄러웠다. 동료들이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넘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 한 해는 이승우의 축구 인생에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지난 6월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멤버로 발탁돼 ‘A매치 데뷔’와 ‘월드컵 본선 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8월에는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함께 ‘병역 면제’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골을 터뜨린 뒤 광고판에 올라가 세리머니를 펼친 이승우. [뉴스1]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골을 터뜨린 뒤 광고판에 올라가 세리머니를 펼친 이승우. [뉴스1]

이승우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등 두 개의 큰 대회를 거치며 큰 영향을 준 선수로 기성용(29·뉴캐슬 유나이티드)과 손흥민, 그리고 황의조(26·감바 오사카)를 꼽았다. 이승우는 “월드컵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기성용 형은 ‘품격 있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때론 동료들을 강하게 질책할 때도 있었지만, 지적 하나하나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설명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손흥민과 황의조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승우는 “나와 다른 공격 패턴으로 골을 만들어내는 흥민이 형에게서 득점에 대한 강한 집념을 느꼈다. 대회 기간 내내 방을 함께 쓴 의조 형은 수많은 악플과 부정적인 시선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맹활약한 덕분에 소속팀 내 이승우의 입지도 높아졌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무대에 데뷔한 지난 시즌엔 주로 벤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 시즌엔 붙박이 선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 파비오 그로소(이탈리아) 헬라스 베로나 신임 감독은 이승우에게 “러시아 월드컵을 경험한 뒤 경기력이 부쩍 성장한 걸 확인했다”면서 “올 시즌에 공격 전술의 구심점으로 활용할 테니 금메달을 목에 건 뒤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격려했다. 올 시즌 베로나 현지 팬들은 이승우를 ‘그로소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바르셀로나(스페인) 유스팀에서 성장한 이승우가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는 그로소 감독의 전술 스타일에 최적화된 선수라는 의미다.

이승우는 AC밀란을 비롯해 유럽 여러 클럽들의 주목을 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장진영 기자

이승우는 AC밀란을 비롯해 유럽 여러 클럽들의 주목을 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장진영 기자

이탈리아 명문 AC밀란을 비롯해 아탈란타(이탈리아),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스페인), 흐로닝언(네덜란드) 등도 올여름 이승우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다. 밀란과 알라베스의 스카우팅 디렉터는 아시안게임이 열린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이승우가 뛴 결승전을 직접 지켜봤다.

소속팀의 반대로 이적은 무산됐지만, 여전히 이적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승우는 “훌륭한 팀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여 기쁘다. 지금은 헬라스 베로나의 1부 리그 승격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지만, 나중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라며 빙긋 웃었다.

두 번의 메이저 대회를 거치며 자신감을 키운 이승우의 눈은 이제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을 향한다. ‘아시아의 축구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이 지난 1960년 이후 58년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대회다. 이승우는 “월드컵을 통해 강자들과 경쟁하는 방법을 배웠고, 아시안게임에서는 힘든 일정과 열악한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웠다”며 “아시안게임 우승 직후 ‘이승우가 이승우 했다’는 댓글을 보고 멋쩍으면서도 내심 기뻤다. 아시안컵에서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축구대표팀 공격수 이승우는 …

출생: 1998년 1월6일 경기도 수원
체격: 키 1m73㎝, 몸무게 63㎏
소속팀: 헬라스 베로나(이탈리아)
포지션: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이력: 16세 이하 아시아 챔피언십 준우승(2014)
17세 이하 FIFA 월드컵 16강(2015)
20세 이하 FIFA 월드컵 16강(2017)
아시안게임 금메달(2018)
별명: 코리안 메시, 뽀시래기(부스러기, 막내를 뜻하는 사투리)

고양=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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