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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텐더의 꿈 담은 위스키 'NOT A DREA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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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3)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편집자>

여자 바텐더와 위스키. 여자 바텐더는 드물다. 칵테일을 만들거나 위스키 한 잔 따르는데 드는 수고로움은 남녀가 같지만, 여자 바텐더에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친다. [사진 김대영]

여자 바텐더와 위스키. 여자 바텐더는 드물다. 칵테일을 만들거나 위스키 한 잔 따르는데 드는 수고로움은 남녀가 같지만, 여자 바텐더에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친다. [사진 김대영]

여자 바텐더는 드물다. 칵테일을 만들거나 위스키 한 잔 따르는데 드는 수고로움은 남녀가 같지만, 여자 바텐더에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친다. ‘여성 주류업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있고, 취객이 몽니를 부리기도 한다.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면 또 다른 문제가 엄습해온다. 바로 육아다. 대부분의 아이 돌봄 기관은 낮에 일하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설계되었다. 밤에 일하는 바텐더를 위한 곳은 거의 없다.

‘야간돌봄유치원’이 있지만, 이마저도 저녁 10시까지다. 보통 바텐더는 저녁 7시부터 새벽 2~3시까지 일한다. 따라서 바텐더에게 아이가 생기면 육아를 위해 직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손님이 가장 많이 오는 저녁 10시 이후에 일할 수 없는 바텐더를 고용하는 바는 거의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바텐더로 살아가는 건 꿈만 같은 일이다.

심야보육원 설립한 일본의 엄마 바텐더 

하지만 꿈은 언젠가 이뤄져야 꿈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바텐더'라는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일본의 ‘주류업계 엄마를 응원하는 모임(酒業界ママを応援する会)’이다. 도쿄 롯폰기의<craft beer bar ant 'n bee> 점주 카와베 마키코(河辺牧子) 씨. 그는 임신과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심야 시간에 아이를 맡아줄 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런 곳은 거의 없었다.

카와베 마키코 씨와 작년 8월에 태어난 아이. [사진 카와베 마키코 제공]

카와베 마키코 씨와 작년 8월에 태어난 아이. [사진 카와베 마키코 제공]

그래서 직접 심야보육원을 만들기로 한 그는 부동산 중개인, 세무사 등과 상담하고 사내보육원 등을 견학했다. 그리고 보육원 설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자적인 라벨을 붙인 위스키를 출시하기로 결심한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나 아빠가 많이 있어요. ‘아이가 있는데 밤에 일을 하나’라고 생각을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작년 8월에 출산한 그는 같은 해 10월 ‘독립병입위스키’를 출시했다. 독립병입위스키란 증류소로부터 술을 사 라벨 등을 별도로 제작해 판매하는 위스키를 말한다.  ‘Not A Dream 글렌토커스 2009’라는 이름의 이 위스키는 글렌토커스 증류소에서 2009년에 만들었다. 위스키병 앞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사진을, 뒤에는 카와베 씨와 동료들의 마음을 담았다.

독립병입 위스키 &#39;Not A Dream 글렌토커스 2009&#39; [사진 일본 &#39;주류업계 엄마를 응원하는 모임&#39; 제공]

독립병입 위스키 &#39;Not A Dream 글렌토커스 2009&#39; [사진 일본 &#39;주류업계 엄마를 응원하는 모임&#39; 제공]

“아이가 생겼다! 너무 기뻤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의 일을 계속하며 아이를 키워나갈 것인가. 고민 끝에 일을 관두는 동료들을 많이 봐왔다. 나는 나답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혹시 미래에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정해지면, 전력으로 응원하고 싶다.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듭시다.”

이 위스키는 100병 한정으로 출시돼 일본 내 여덟 곳의 바에서 마실 수 있다. 위스키 출시 소식이 알려지자 위스키 마니아뿐만 아니라 카와베 씨의 생각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이 바를 찾아 위스키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

스코트랜드로 위스키 유학 다녀온 여자 바텐더

여자 바텐더로부터 선물 받은 귀한 위스키. 올해 스코틀랜드에 다녀온 그는 증류소에서 직접 병인한 위스키를 선물로 줬다. [사진 김대영]

여자 바텐더로부터 선물 받은 귀한 위스키. 올해 스코틀랜드에 다녀온 그는 증류소에서 직접 병인한 위스키를 선물로 줬다. [사진 김대영]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여자 바텐더가 있다. 칵테일 실력도 실력이지만, 술에 대한 지식과 학구열이 엄청나다. 그래서 그와 함께 위스키를 마시면 술맛이 더 좋게 느껴진다. 올해는 위스키를 공부하러 스코틀랜드까지 다녀왔다. 그 경험이 한 잔의 위스키와 버무려져 맛이 더해진다. 열심히 술을 공부한 바텐더의 한 마디는 술맛을 끌어올리는 마법과도 같다.

그가 올가을에 결혼한다. 언젠가 아이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와도 바에서 그를 보고 싶다. 같은 병에 든 위스키라도 어느 바텐더와 마시느냐에 따라 맛은 다르게 느껴진다. 한 바텐더의 술을 지킬 수 있는가, 없는가.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매체팀 대리 kim.dae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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