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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군산·인천 GM 납품 부품공장 … 전체 2곳 중 1곳 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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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자동차 산업 생태계

지난달 27일 오전 전북 군산시 소룡동 군산국가산업단지. 북적여야 할 월요일이지만 오토젠 군산공장은 자물쇠로 공장 문을 걸어잠근 채 파란색 보안장치만 번쩍이고 있었다. 한국GM 군산공장과 담장을 마주한 이 공장은 두어 달 전부터 개점휴업이다. 자동차용 금형·차체부품을 공급하던 한국GM 군산공장이 5월 말 폐쇄되면서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직격탄 #문 닫는 협력사들 계속 늘어나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이중고 #현대차 납품사, 중견업체도 휘청 #전문가들 “단시일내 해결 힘들어”

이날 오후 4명의 인부를 데리고 잠시 군산공장을 방문한 신태곤 오토젠 상무는 한때 기계를 설치했던 장소를 보여주면서 “다른 공장으로 일부 기계를 이전했다. 태풍으로 비가 내려서 (남아 있는 기계가 녹슬까 봐) 정리하러 잠시 내려왔다”고 말했다. 인근에 자리한 또 다른 한국GM 협력사 제이피씨오토모티브는 지난 5월, 삼성공업은 지난 7월 각각 군산공장 문을 닫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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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수출의 11.2%(627억8700만 달러·69조9000억원)와 제조업 일자리의 10.9%(40만536명)를 책임지고 있는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89개 회원사 1분기 실적을 집계한 결과, 자동차 부품사 올해 영업이익(1249억원)은 지난해 1분기(5430억원) 대비 77%나 감소했다. 특히 이들 중 절반(42개사·47.2%)가량이 적자였다.

더 걱정스러운 건 지난해 흑자였다가 올해 1분기 적자로 전환한 업체가 42개사 중 28개(66.7%)나 된다는 점이다. 한국GM이 2월 군산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한 이후 국내 부품사가 대거 적자로 돌아섰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자동차 업종 체감경기(64포인트)는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른 완성차에 납품하는 부품사도 사정의 녹록지 않다.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인 리한은 6월 산업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2차 협력사 엠티코리아는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또 다른 2차 협력사 애나인더스트리도 부도를 맞았다.

권나현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현대·기아차 주요 1차 협력사의 최근 상각 전 영업이익이 2012년 이후 6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글로벌 시장을 뚫었다는 중견 부품사도 경영상황이 악화하는 건 매한가지다. 만도(-25.1%)·한온시스템(-28.3%)·화신(-170억원) 등 주요 부품사 1분기 실적도 줄줄이 내리막이다. 경상남도 지역 중견 부품사 관계자는 “연초 현대차 임원이 지역 부품사를 불러모아 ‘이제 과거처럼 최소 마진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며 ‘알아서 각자 살길을 모색하라’고 충고하더라”고 말했다.

문제는 무너지는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되살릴 수 있는 뾰족한 방법조차 없다는 점이다. 중앙일보가 5명의 자동차 산업 전문가에게 해법을 물었지만 하나같이 “하루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국내 완성차 제조사 실적이 하락하는데 국내 부품사가 지나치게 국내 완성차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공장이 생산한 차량(411만 대)은 2011년(465만 대) 대비 13%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매출처 다변화를 제안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부품 기업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거래처를 발굴하라”고 말했고,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상생협력연구본부장은 “중국 등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독자 노선을 강화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조언했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존에 완성차 업계에 납품하던 부품을 전자산업 등 다른 제조업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한국GM의 1차 협력사인 천일엔지니어링 조환수 대표가 한국GM 납품 물량이 감소한 이후 신규 판로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한국GM의 1차 협력사인 천일엔지니어링 조환수 대표가 한국GM 납품 물량이 감소한 이후 신규 판로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문제는 올해 경영실적이 악화한 상황에서 중소 부품사가 해외 신규 거래처를 뚫을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천일엔지니어링의 조환수 대표는 “국내 물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포드·마그나 등 대체 납품처를 물색하고 있지만 해외 신규 매출처를 뚫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난달 24일 중앙일보가 방문한 이 공장 옥상엔 한때 부품으로 가득했던 빈 박스 6000여 개가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올해 들어 납품 물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들도 이런 방법이 당장 속속 무너지는 자동차 생태계를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김세엽 자동차부품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래 자동차 기술 역량에 투자하는 게 정답이겠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고, 김수욱 교수도 “당장 대안을 찾기는 어렵고, 장기적으로 부품 기업부터 조금씩 기술역량을 키워 나가면서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세엽 선임연구위원은 “부품사가 완성차 업체에 기술적으로 종속되는 현상을 해결하라”고 제안했고, 강영훈 울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해외박람회 참가 지원처럼 형식적인 지원을 그만두고 실제 해외 거래처를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하청업체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완성차 제조사에 대한 적극적인 감시도 요구했다. 국내 2개 완성차에 납품하는 한 자동차 부품 기업은 “6년 전부터 단 한 번도 납품 단가 인상이 없었다”며 “오히려 납기 지연 시 벌금 등 조건만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 영업이익률이 최근 급감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악화하는 경영 환경에서 이번 정부의 각종 정책은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이미 주40시간 근무제도가 정착한 완성차 제조사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문제는 영세 부품 협력사다. 완성차가 요구하는 마감시한에 맞춰 수시로 납품해야 하는 부품사 특성상 중소기업 근로자는 특근·야근이 불가피하다.

한 자동차 부품 기업 관계자는 “대부분의 자동차 부품 회사는 직원 1명당 비용이 생산성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영세 사업장에 근로시간 단축제가 시행되기 전에 공장을 팔고 자동차 부품 업계를 떠나려는 이들이 주변에 꽤 많다”고 말했다.

인천·군산=문희철·윤정민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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