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투데이, 삼겹살 오케이?”
베트남 사격 이끄는 한국지도자 #제자 쑤안 빈은 리우 올림픽 금
3일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린 경남 창원 국제사격장. 대회에 출전한 ‘베트남의 사격 영웅’ 호앙 쑤안 빈(44)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가 부른 “감독님”은 한국인 지도자 박충건(52)이다.
박항서(59)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 오르면서 베트남 전역이 들썩였지만, 지도자 ‘한류 열풍’의 원조는 박충건 감독이다.
현역 육군 대령인 호앙 쑤안 빈은 2년 전 리우 올림픽 10m 공기권총 결선에서 올림픽 신기록(202.5점)을 쏴 진종오를 꺾고 깜짝 우승했다. 베트남 스포츠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호앙 쑤안 빈은 베트남 정부의 포상금은 물론 각종 광고에 출연해 5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 베트남의 연평균 국민소득은 2385달러(약 260만원) 수준. 베트남 평범한 직장인이 200년을 넘게 벌어야 만질 수 있는 거액을 그가 벌어들인 것이다.
베트남의 사격 신화 뒤엔 베트남 사격을 세계 톱클래스로 끌어올린 박충근 감독이 있었다. 권총 선수 출신인 박 감독은 1993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을 지냈다. 2006년부터 경북체육회 지도자를 맡아 베트남 사격과 교류했다. 선수들 실력이 쑥쑥 늘자 베트남 사격연맹은 2014년 아예 박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했다.
박 감독은 “리우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 당시 환영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국방부 장관이 호앙 쑤안 빈을 중령에서 대령으로 특진시켰다”고 전했다. 그는 또 “사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베트남에선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박항서 감독님이 축구를 킹 스포츠로 만들었다. 요즘 베트남인들은 식당에서 김치를 먹고, 한국의 TV 프로그램을 시청한다”고 전했다.
박항서 감독이 축구 선수들에게 ‘우리는 베트남’이라고 자부심을 심어준 것처럼, 박충건 감독도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박 감독은 “내 인생을 걸고 베트남에 왔다. 세계 최고의 장비와 기술을 전해주겠다”며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베트남 사격 선수는 약 200명에 불과하다. 지금도 전자 표적 시설이 없는데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을 한국으로 이끌고 와 훈련을 했다. 호앙 쑤안 빈은 “감독님은 훈련을 많이 시킨다”며 “축구의 박항서 감독님처럼 우리 감독님도 새로운 스타일과 방법을 가르쳐주신다. 늘 목표를 높게 설정하라는 말씀이 동기부여가 된다. 한국인 감독님들이 베트남을 변하게 했다”고 말했다.
박항서 감독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박충건 감독은 박항서 감독을 “밥 잘 사주는 큰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베트남 식당에서 둘이 식사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다음날 베트남 신문에 ‘두 박 감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면서 “창원 사격선수권 개회식 날 휴대전화로 베트남 축구를 틈틈이 챙겨봤다. 박항서 감독님이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주셨다. 창원에도 응원하러 오겠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박항서 감독, 박충건 감독뿐만 아니라 베트남 대표팀을 가르치고 있는 한국 지도자들은 또 있다. 펜싱의 신무협, 태권도의 김길태, 골프의 박지운, 양궁의 김선빈 등이 베트남 대표팀 지도자로 활약 중이다. 박충건 감독은 “베트남 사상 처음으로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창원=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