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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할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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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할복은 일본에서 유래된 자결 방법이다.'셋푸쿠(切腹)' 또는 '하라키리(腹切り)'라고 한다. 일본에선 '극도의 냉정과 침착을 요하는 무사의 세련된 자결방법'으로 통한다. 하필 배를 가르는 것은 옛날부터 일본인들은 복부를 혼이 깃들어 있는 부위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처음 할복한 사람은 무사가 아니었다. 헤이안(平安)시대인 988년 유명한 도적이던 하카마다레(袴垂)가 밀고자에게 쫓기자 배를 갈라 자결했다. 이것이 '셋푸쿠'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에는 전투에서 사로잡힌 무사들이 절개를 지킨다며 할복했다. 그후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 체제의 에도(江戶)시대에 할복의 관행과 양식이 정착됐다.

할복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형벌의 성격이 있는가 하면 책임을 지거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것도 많다. 주군(主君)을 따라 죽는 순사(殉死)형 할복도 유행했다. 할복으로 뒤를 좇는다는 뜻에서 이를 '오이바라(追腹)'라고 부른다.

시간이 갈수록 할복은 남용되는 경향도 보였다. 무사는 망신을 당하면 할복으로 위신을 회복해야 했다. 또 싸움을 해 한쪽이 죽기라도 하면 살아남은 쪽이 할복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밖에 주군의 밥에 돌이 들어가면 식사담당을 할복시키기도 했다. 밤에 늦게 들어왔다고 할복, 말에서 내려야 할 장소에서 안 내렸다고 할복…. 이런 식으로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일도 적잖았다.

물론 형식은 자결이지만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등 떠밀려 억지로 할복하는 것을 '쓰메바라(詰腹)'라고 한다.

때로는 할복령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저항할 기미가 보이면 주군은 군사를 풀어 무사를 살해하기도 했다. 에도시대 무사들의 생사여탈권은 그들이 섬기는 주군이나 바쿠후에 있었기에 일어났던 일들이다. 이를 두고 할복이 에도시대의 피라미드형 위계조직을 유지하는 규율의 일부였다는 해석도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선 항의형이 많다.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울분을 표출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 많았던 탓일까. 얼마 전 멕시코 칸쿤에서도 그랬다.

이유가 무엇이든 귀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