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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Dr 스트레인지와 아인슈타인의 시간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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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타임스톤으로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캡처]

마블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타임스톤으로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캡처]

SF(science fiction)? SF(social fiction)!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상상력’입니다. 미래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내일의 삶이 달라지죠. 그런 의미에서 SF는 'Science Fiction(공상과학)'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Social Fiction(사회적 상상력)’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비단 기술의 발달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문명 전체를 바꿔놓기 때문이죠. 우리가 얼마나 많은 SF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도 바뀝니다.
 ‘인간혁명’은 SF적 상상력이 실제 과학기술과 인간문명의 발전을 이끈다는 측면에서 『SF(science fiction)? SF(social fictio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소통하는 과학자’로 유명한 김상욱 경희대 교수(물리학)와 함께 SF 영화와 소설에 나온 이야기들이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살펴보고 실제 과학이론과의 연관성은 어떤지 따져봅니다.
 오늘도 지난 회에 이어 ‘마블 영화에 담긴 과학 코드’를 소개합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재밌게 봤던 아이언맨·스파이더맨·헐크 등 히어로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현실과 미래의 접점을 찾아봅니다. 지금부터 흥미로운 SF의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과학적 지식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 보시죠.

마블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타임스톤으로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캡처]

마블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타임스톤으로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캡처]

“We’re in the endgame now.”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가 최강 빌런 타노스에게 타임스톤을 건네주며 한 말입니다. 이로써 타노스는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으고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증발시킵니다. (#우주가 만들어질 때 생겨난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가진 자는 신적인 능력을 갖게 됩니다. 타노스는 인구폭발과 자원고갈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언맨, 스타로드, 스파이더맨 등 히어로들과 함께 맹렬히 싸우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왜 갑자기 마지막 스톤을 알아서 건넸을까요? 그 답은 미래를 보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는 타임스톤을 이용해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합니다. 타노스와의 전투 중에 그는 앞으로 펼쳐질 1400만 개의 미래를 내다봤죠. 그 중 타노스를 이길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을 위해 순순히 타임스톤을 넘겨준 것이었죠.

타임스톤을 빼앗은 타노스는 모든 생명체를 절반으로 줄이려 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타임스톤을 빼앗은 타노스는 모든 생명체를 절반으로 줄이려 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닥터 스트레인지는 1400만분의 1이라는 기적과도 같은 가능성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마지막 전쟁(endgame)’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내년 개봉할 ‘어벤져스4’를 봐야 알 수 있지만 아마도 우리의 믿음직스런 마블 히어로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기적을 이뤄내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이처럼 ‘타임스톤’은 어벤져스 3탄과 4탄을 연결해주는 핵심 연결고리입니다. 타임스톤의 능력을 이어받은 자는 말 그대로 ‘시간’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SF 영화와 소설의 단골 소재인 ‘시간여행’이 타임스톤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시간여행은 많은 문화·예술 작품에서 지나간 과거를 되돌리고, 다가올 미래를 먼저 내다보는 이야기로 수없이 재생됐습니다.

 기록에 전하는 최초의 시간여행 이야기는 기원전 8세기경 고대 인도에서 만들어진 ‘마하바라타’라는 서사시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이 작품엔 라이바타라는 왕의 모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세상을 창조한 신 브라마를 만나고 왔는데, 그 사이 엄청난 세월이 흘러 있었습니다. 신과 함께 있던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이승에선 이미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죠.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고대 인도의 서사시. [문화콘텐츠닷컴]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고대 인도의 서사시. [문화콘텐츠닷컴]

 비슷한 이야기는 중국에도 있습니다. 6세기경 중국 양나라 때 쓰인 ‘술이기(述異記)’란 책에는 ‘난가(爛柯)’의 전설이 나옵니다. 난가는 말 그대로 ‘썩은 도끼자루’란 뜻이죠. 한번 정신이 팔리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의미로 과거엔 ‘바둑’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책에 따르면 춘추시대 진나라에 왕질(王質)이란 나무꾼이 있었는데 어느 날 평소 가보지 못한 깊은 산중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어린 동자(童子) 2명이 바둑 두는 걸 지켜보면서 이들이 준 귤을 먹었습니다. 허기를 달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바둑을 구경하다 집에 가려고 자리를 일어섰더니 도끼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날은 그대로 있는데, 자루는 썩어 없어진 것이었죠.

 부랴부랴 마을로 내려 온 왕질은 변해버린 동네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집에선 낯선 이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제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 살펴보니 이들은 자신의 제사를 준비하는 ‘알지도 못하는’ 후손들이었습니다. 즉, 동자 2명은 신선이었고 그들이 준 귤은 시간은 천천히 흐르게 하는 영약이었던 것이죠.

꿈 속의 무릉도원을 화폭에 담은 안견의 몽유도원도. [중앙포토]

꿈 속의 무릉도원을 화폭에 담은 안견의 몽유도원도. [중앙포토]

 이처럼 ‘시간여행’은 인류가 오랜 시간 꿈꿔왔던 마법 같은 능력입니다.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죠. 브라마를 만나고 온 왕이나 신선의 바둑을 구경했던 나무꾼 모두 시간이 ‘상대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신들의 세계는 인간의 세상보다 시간이 훨씬 느리게 흐르고, 그 때문에 인간의 삶은 더욱 짧게 느껴집니다. 마블 영화에서도 ‘천둥의 신’ 토르는 인간보다 훨씬 긴 5000년 이상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 전설 속에 내려오는 이런 이야기들이 아주 ‘과학적’인 거라면 여러분은 쉽게 믿음이 가나요? 그 해답은 바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있습니다. 김상욱 교수는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상황에 따라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도 빨리 흐르기도 한다는 의미”라며 “결국 시간 또한 고정 불변의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진 픽사베이]

20세기 최고의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진 픽사베이]

 아인슈타인은 어릴 적 다른 과목은 낙제였지만 수학과 물리학만큼은 늘 만점이었습니다. 과학 ‘덕후’였던 소년 아인슈타인은 한 가지 재밌는 상상을 했죠.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빛을 그와 똑같은 속도로 따라가면서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의문을 늘 품고 있던 아인슈타인은 26살이 되던 1905년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훗날 ‘특수상대성이론’이라고 이름 붙은 이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 심사관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시계에 대한 특허 건을 많이 다뤘습니다. 당시 유럽은 철로를 대륙 전역으로 확장하던 시기였죠. 그러나 각 지역마다 시간이 달라 이를 통일하는 게 큰 과제였습니다. 예를 들어 베른의 시계는 7시10분인데 취리히의 시계는 7시30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승객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프라하의 시계탑. 20세기 초반 유럽에선 대륙 전역에 철도가 연결되면서 시간을 통일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중앙포토]

프라하의 시계탑. 20세기 초반 유럽에선 대륙 전역에 철도가 연결되면서 시간을 통일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중앙포토]

 시계에 관한 특허를 많이 다뤘던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한 가지 힌트를 얻습니다. 베른과 취리히의 시계가 서로 다른 시각을 가리키듯, 시간도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속 80km로 달리는 자동차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이는 가만 서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속도입니다. 반면 같은 방향으로 40km/h로 달리는 오토바이가 봤을 때 자동차의 속도는 40km/h입니다. 만일 반대 방향에서 80km/h로 달려오는 자동차에서 본다면 160km/h로 느껴질 것입니다.

용어사전속력과 속도

 일상 속에서 표현하는 물체의 빠르기를 속력이라고 한다. 반면 속도는 물체의 빠르기와 이동 방향을 함께 표시하는 벡터의 개념이다. 물리학에선 주로 속도를 사용한다.

 이렇게 속도가 상대적이듯 시간도 상대적이란 것이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습니다. 김상욱 교수는 “등속운동을 하는 물체에선 속도가 클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며 “반대로 느린 물체에선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간다”고 말합니다. 즉, 속도가 높아질수록 시간이 점차 느려지고 빛의 속도에 도달하면 시간은 멈추게 됩니다.

 물리학에선 흔히 쌍둥이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지구에 있는 쌍둥이 언니와 매우 빠른 우주선을 타고 움직이는 동생은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흐릅니다. 언니는 이미 노인이 됐지만 동생은 아직 젊음을 유지하고 있죠. 우주선이 아주 빠르게 등속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동생이 임무를 마치고 지구에 돌아오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노인이 된 것을 발견하겠죠. 이는 마치 무릉도원에 다녀온 나무꾼의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현대 과학에서 설명 가능한 ‘시간여행’은 이와 같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가장 유력합니다.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우주선만 있다면 자신의 시간은 멈춘 상태에서 얼마든지 미래로 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SF 영화의 타임머신처럼 자유자재로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은 아닙니다.

 특히 과거로 가는 것은 이론적으로 성립조차 안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빛의 속도로 달렸을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성과는 시간이 멈추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빛보다 빨라야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죠. 그러나 이론적으로 빛보다 빠른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또 하나는 인과율입니다. 김상욱 교수는 “원인과 결과는 가장 기본적인 자연법칙”이라며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현재에 영향을 미쳐 지금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인과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적외선 우주망원경 '스피처'가 보내온 먼 우주의 사진. 왼쪽부터 나선형 M81 은하(1200만 광년), 입자를 뿜으며 새 별이 만들어지는 모습,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원시성(2400만광년), 먼지에 둘러싸인 혜성.[나사 AP =연합]

적외선 우주망원경 '스피처'가 보내온 먼 우주의 사진. 왼쪽부터 나선형 M81 은하(1200만 광년), 입자를 뿜으며 새 별이 만들어지는 모습,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원시성(2400만광년), 먼지에 둘러싸인 혜성.[나사 AP =연합]

 결국 고대에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시간여행에 대한 인간의 상상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리해보면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밤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별빛은 현재이면서 동시에 과거입니다.

 오랜 시간 탐험가들의 좌표가 됐던 북극성은 지구로부터 약 1000광년이 떨어져 있습니다. 이는 빛의 속도로 1000년을 가야 할 만큼 멀리 있다는 뜻이죠. 우리가 보는 북극성의 밝은 빛은 실제 북극성에서 1000년 전에 출발한 빛입니다. 즉, 지금 밤하늘의 북극성은 아주 오래된 과거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밝게 빛나는 별 중 지금은 사라지고만 것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만화에 자주 나오는 안드로메다는 200만 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빛의 빠르기로 200만년을 가야 닿을 거리입니다. 이처럼 밤하늘의 별빛은 과거로부터 온 기억의 ‘사자(使者)’인 셈입니다.

유인원에서 비롯된 현생 인류는 늘 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봤다.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다가올 일은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유인원에서 비롯된 현생 인류는 늘 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봤다.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다가올 일은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아마도 인간이 오랫동안 시간여행을 꿈꿨던 것은 지난 일을 단순히 추억하고 싶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과거의 잘못들을 바로 잡고, 더 나은 현재를 만들기 위한 열망이 시간여행이라는 상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때 그랬으면 더 좋았을 걸”, “예전에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과 후회 등이 타임머신을 만든 가장 큰 동력인 거죠.

 하지만 진짜 ‘타임머신’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하루를 1년같이 살 수도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지난 일을 바로 잡을 수 없지만, ‘내일의 과거’는 얼마든지 우리 맘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지금의 삶이 모여 내일의 나를 만들기 때문에, 그런 미래의 나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오늘의 나를 바꾸면 됩니다.

 이처럼 진짜 타임머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결단과 행동입니다.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미래는 지금의 내가 충분히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홈페이지(https:www.joongang.co.kr/issueseries/1014)

윤석만 기자는

2005년부터 언론계에 몸담았다.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출입처를 거치며 시민·미래·인문 분야의 보도에 집중했다. 4차 혁명시대엔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란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아울러 다가올 미래를 인문의 관점에서 통찰한 '인간혁명의 시대', 보수 정치사상과 자유주의를 현실에 맞게 적용한 ‘리라이트’ 등을 썼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 행사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주제로 기조발표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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