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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엔 2680만원 그냥 주고···30만원 소녀가장은 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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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680만원. 경남 창녕군이 셋째 아이에게 주는 출산 장려금이다(만 5세까지, 2018년생 기준). 전국 기초단체 가운데 가장 많다.
30만원. 창녕군 저소득층 중학생이 군에서 받는 장학금이다(1년 기준).

창녕군 출산장려금 2680만원은 이 지역에서 셋째로 태어나기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부모의 재산ㆍ소득 등을 따지지 않는다. 지난해 총 166명이 이 돈을 받았다.

반면 창녕군 장학금 30만원은 저소득 영세농어민 자녀로 학업 성적이 우수하거나,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거나, 소년 소녀 가장인 학생 중 선발해서 준다. 집안 경제상황이 나아지면 수급 자격을 잃는다. 지난해 이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15명이다.

지자체의 출산장려금은 흔히 ‘묻지마 장려금’으로 불린다. 수급자의 소득ㆍ재산 등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돈은 모두 세금에서 나온다.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 걸까.

‘묻지마’ 출산장려금

전국에서 출산장려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10곳은 아래 표와 같다.

전남 영광군은 2010년 이후 291명의 아동에게 1000만원 이상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 이전에는 100만원대였지만 2010년부터 금액을 대폭 끌어올려 넷째 아이에게 1100만원을 주기 시작했다. 이후 계속 액수를 올려 현재는 첫째~넷째 아이에게 각각 240만·400만·1200만·1500만원을 준다. 부모의 소득이나 재산은 따지지 않는다. 출생일 기준으로 보호자 중 1명이라도 영광군에 주민 등록이 있으면 무조건 준다.

영광군은 전국 기초단체 가운데 한부모와 사는 아동 비율이 가장 높다(2016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이 지역 15세 미만 아이 5명 가운데 1명(19.3%)이 아버지나 어머니 한 쪽과 산다. 이들에 대한 군의 지원금은 없다. 국가가 주는 저소득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월 13~18만원)와 학용품비(연 5만원), 전라남도가 주는 생활지원금(월 3~6만원)이 전부다. 이런 국ㆍ도비를 받으려면 스스로 중위소득 52% 이하의 차상위계층임을 입증해야 한다.

‘먹튀’에도 무방비

지자체가 출산장려금을 주는 이유는 인구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고소득자가 출산장려금을 받고 그 지역에 계속 머무른다면 '인구 균형'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출산 전 전입 신고를 했다가 장려금만 받고 다시 주소를 옮기는 이들이 많다. 이른바 ‘먹튀’다. 지자체들은 이를 막기 위해 출산 장려금을 몇년에 걸쳐 나눠 지급하고 있지만, ‘먹튀’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남 해남 사례를 보자. 해남의 합계출산율은 전국 평균(1.05)의 2배(2.1)다. 2012년부터 7년 연속 전국 1위를 지키고 있다. 인구정책을 잘 했다고 지난 정부 때(2016년)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현재 인구에서 줄어들지 않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합계출산율을 ‘대체출산율’이라고 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그 수치를 2.1로 본다. 2017년 기준 대체출산율 2.1을 충족한 곳은 전국에서 해남이 유일했다. 이론상 전국 모든 시ㆍ군ㆍ구 인구가 줄어도 해남만은 인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데 해남의 실제 인구는 줄고 있다. 출산율 전국 1위를 지키는 사이(2012~2017년) 전체 인구는 6%, 0~4세 인구는 8% 줄었다. 해남군 인구 중 0~4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3.7%로, 전국 평균(4.0%)보다 낮다.

해남군은 첫째~셋째 아이에게 350만~72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준다. 2013~2017년 3925명이 장려금을 받았다. 이들이 쭉 해남에 살았다면 2017년말 해남군 0~4세 아동이 최소 3925명은 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2716명에 불과했다. 장려금을 받은 아이의 69% 이하만 해남에 남은 것이다. 137억1100만원(2013~2017년)을 출산장려금으로 지출한 결과가 이렇다.

전북 무주군과 경남 합천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셋째 이상 아이가 태어나면 무주군은 2년 반 동안 총 1000만원, 합천군은 5년간 총 1700만원을 준다. 두 지자체에 따르면 2013~2017년 각각 총 840명과 1153명이 출산장려금을 받았다.

한데 2017년말 무주군과 합천군에 사는 0~4세 아이는 각각 624명과 874명 뿐이다. 장려금을 받은 아이 수의 각각 74%, 76%에 불과하다. 장려금을 받고 5년이 안 돼 지역을 떠난 것이다.

결혼∙출산도 '못한' 사람은?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다. 아무리 인구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도, 억지로 결혼을 하고 애를 낳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자체가 출산 장려금을 주는 것은 ‘자녀를 낳고 싶어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못 낳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전국 1인 가구 중 기초생활수급가구는 12%다. 반면 5인 이상 가구 중 수급 가구는 3%에 불과하다(2017년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수급자 현황). 가구원 수가 많은 가구보다 적은 가구의 복지가 더 취약한 셈이다.

한데 현재의 출산장려금 정책은 이미 아이가 있는 가구가 셋째ㆍ넷째 아이를 낳아야만 거액을 주는 구조다. 정작 경제적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아예 하지 못한 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출산장려금 액수 전국 Top10인 지자체의 살림살이는 아래와 같다.

재정자립도 30%를 넘는 곳이 없다. 재정자립도는 재정수입 중 자체 재원이 차지하는 비율로, 지자체가 필요한 돈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둘째 아이 장려금으로 1000만원을 주는 경북 봉화군은 재정자립도가 14.3%로 전국 226개 기초단체 중 220위다.

‘자체수입 대비 인건비’는 지방세나 세외수입으로 버는 돈 대비 지방공무원 인건비를 말한다. 숫자가 클수록 재정이 빈약하다는 의미다. 100이 넘으면 스스로 인건비도 못 댄다는 뜻이다. 출산장려금 많이 주는 10곳 지자체는 충남 보령(75%)를 제외하고는 모두 100이 넘는다. 전남 완도와 경북 봉화는 자체 수입으로는 공무원 인건비 절반만 감당할 수 있다. 이들 지역의 기초생활수급 가구 비율은 모두 전국 평균보다 높다.

[출산장려금의 불편한 진실]
① 출산장려금 '1000만원 클럽' 전국 58곳, 과연 효과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22649
② 출산율 높은데 ‘소멸위험’ 1위? 출산율 통계의 함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26172
③ 부자는 그냥 주는 2680만원, 소녀가장도 골라 주는 40만원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그래픽=임해든 디자이너, 유선우 인턴

출산장려금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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