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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점검 열차 방북 불허는 유엔사 아닌 워싱턴의 결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북이 공동으로 북측의 경의선 철도 구간을 조사하기 위해 열차를 시범운행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군사분계선(MDL) 통과 승인권을 가진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승인하지 않으면서다. 이 열차가 대북제재 금지품목인 경유를 실은 연료차를 동반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 “경유 연료 문제 삼아”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외교 소식통은 30일 “유엔사가 한국 정부에 불허 통보와 함께 ‘경유를 가져 가는 것은 대북제재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엔사 측은 ‘이번 결정은 브룩스(유엔군사령관)의 손을 떠나 워싱턴(미국 정부)에서 이뤄졌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한다. 남북 경협의 속도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이 소식통의 설명은 유엔사의 공식 입장과 다르다. 유엔사는 이날 “유엔사는 (한국) 정부에 방북에 관한 보다 정확한 세부 사항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제출한 서류가 미비했기 때문에 불허했다는 뜻이다. 당초 계획은 지난 22일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는 MDL을 넘어 개성을 거쳐 신의주까지 운행하고 27일 돌아오는 것이었다. 남북은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 연결과 현대화’에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철도와 도로의 연결은 한반도 공동 번영의 시작”이라며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철도·도로 연결은 올해 안에 착공식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열차는 기관차 이외 객차·회의차·침대차·물차·연료차·발전차 등 6량으로 구성됐다. 문제는 연료차에 실린 경유다. 경유는 유엔의 제재에 따라 대북 반출이 금지된 품목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북한이 경유를 사용할 우려가 없다는 점을 유엔사에 충분히 설명했다. 그런데도 유엔사는 열차가 MDL을 넘어가면 경유 사용처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북제재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남북 시범운행 열차는 판문점 선언 이행 차원으로 대북제재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대북제재 관련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 등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강조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시작 단계부터 곤경에 처하게 됐다. 미국 정부가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데다 북측 구간에 대한 공동 조사가 늦어지면서 사업의 전망이 어두워졌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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