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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문 대통령 종전선언 제안, 싱가포르 합의로 꼬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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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뉴스1]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뉴스1]

"종전선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제안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도 흔쾌히 수용한 카드였다. 지금은 순서를 놓고 단단히 꼬여 버렸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ㆍ안보특보가 29일(현지시간) 북ㆍ미 비핵화 협상 교착 사태의 원인을 진단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북한이 왜 미국의 핵 신고와 사찰 같은 비핵화 요구를 거부하면서 종전선언부터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전말을 소개했다.

[비핵화 교착 사태 빠뜨린 종전선언 전말] #"베를린선언이후 지난해 11월 북ㆍ미 제안, #평화협정 대체 전 유엔사 등 정전협정 유지" #북 "트럼프 대통령이 곧 서명한다고 약속, #싱가포르 합의문 번호순 이행" 주장에 꼬여

미 싱크탱크 세미나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한 문 특보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11월 종전선언의 구체적인 안을 마련해 미국 정부에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미국 전문가와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기존 정전협정이 유지된다는 내용을 모른 채 '종전선언이 비가역적(irreversible) 조치며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난한다"고 말했다.

문 특보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선언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밝힌 뒤 4개 항으로 구성된 구체적인 종전선언 안을 마련했다. 우리 정부의 제안에 북·미 모두 긍정적 반응을 보였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끌어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원래 싱가포르 남ㆍ북ㆍ미 3국 종전선언을 원했지만 북·미가 거부해 무산됐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의 1항은 관련국 정상이 모여 한국전쟁 종전을 공식 선언한다는 상징적 조치를 규정했고, 2항은 '남ㆍ북, 북ㆍ미 간 적대 관계의 청산'으로 구성됐다. 여기엔 한ㆍ미 연합훈련의 지속 중단과 전략자산 전개 중지, 평양ㆍ워싱턴에 북ㆍ미 연락사무소 교차 설치와 미국의 대북 핵 및 재래식 위협 중단 성명 등이 포함될 수 있다. 3항은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는 한시적으로 유엔군사령부(UNC) 및 군사분계선(DMZ) 등 기존 정전협정과 부속 조치를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4항은 북한의 비핵화에 평화협정과 외교관계 정상화를 연계해 비핵화가 완료될 때 평화협정 체결과 북ㆍ미 수교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문 특보는 “우리 종전선언 제안은 사실상 평화협정의 전문 성격이기 때문에 허투루 만든 게 아니다”라며 “3항과 4항에 따라 유엔군사령부 지위가 유지돼 주한미군 주둔 철수를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비핵화가 완료되지 않으면 현재 정전체제가 지속한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은 일의 순서, 시간표가 빠진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문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후 "합의문 4개 항목의 번호순으로 1항의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이며, 그것의 가장 중요한 징표가 종전선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종전선언을 곧 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발목을 잡았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미디어는 이날 복수 소식통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회담 이후 곧바로 종전선언에 서명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한을 정해 약속을 했는지는 불투명하다”면서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6월 1일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도 같은 약속을 한 것으로 북한은 믿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극심한 유혈 분쟁이 한반도를 유린한 지 거의 70년이 지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이제 우리 모두 전쟁이 끝날 것이란 희망을 갖게 됐고 실제 곧 끝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북측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7월 방북해 종전선언 선행 주장을 거부하자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직접 물어보라”고 요구까지 했다는 것이다.

문 특보는 “종전선언 순서 때문에 꼬인 교착상태를 풀 해법이 있느냐”는 질문엔 “나도 모른다”면서 “북ㆍ미 양측이 계속 대화에 참여하면서 풀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종전선언의 순서가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비핵화할 의도가 없다는 게 핵심”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순진하게 김 위원장이 자신을 믿고 비핵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덜컥 종전선언을 합의했지만 지금에 와서 현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여전히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한ㆍ미 훈련 중단, 대북 제재 완화와 주한미군 철수의 구실로 활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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