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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높은 경북 의성군, 소멸위험 지역 1위···무슨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북 의성군은 ‘소멸 위험’ 전국 1위 지역이다. 저출산ㆍ고령화로 인구가 계속 줄어, 지역 공동체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란 얘기다(한국고용정보원 ‘한국의 지방 소멸 2018’). 한데 의성군의 출산율은 낮지 않다. 전국 260곳 기초 시ㆍ군ㆍ구 가운데 42위로, 상위 16%에 해당한다(통계청 ‘2017년 출생통계’). 출산을 많이 하는데, 인구가 줄어 소멸할 위험이 가장 높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합계출산율의 착시효과

보통 출생률이라고 하면 조출생률, 즉 ‘인구 1000명당 태어난 아기 수’를 말한다. 2017년 출생률이 7.0이란 건, 지난해 한국인 1000명당 아기 7.0명이 태어났다는 의미다.
흔히 말하는 출산율은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출생아 수’를 가리킨다. 즉 출생률이 순수하게 신생아 숫자만 따지지만, 출산율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여성(가임기 여성) 가운데 실제 아이를 낳은 경우가 얼마나 되냐를 따지는 셈이다.
가령, 인구가 다음과 같이 100명으로 이뤄진 동네 3곳이 있다고 치자.

'대박' 출산장려금의 불편한 진실②

A 동네 : 30세 부부 20쌍과 30세 남성 60명. (남 80/여20)
B 동네 : 30세 부부 20쌍과 30세 여성 60명. (남 20/여80)
C 동네 : 30세 부부 20쌍, 30세 여성 20명, 80세 할머니 40명. (남 20/여80)

올해 A, B, C 동네에서 각각 아기 10명씩 태어났다면, 세 동네의 인구는 총 110명, 조출생률은 95.2로 동일하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은 A(0.5), C(0.25), B(0.125) 순이 된다.

전체 인구 대비 태어난 아기 숫자를 따지는 출생률과 달리, 합계출산율은 가임기(15~49세) 여성의 그해 연령대별 출산율을 합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출생아 수(분자)가 같아도 15~49세 여성이 많이 사는(분모가 큰) 지역의 합계출산율이 낮아진다.

실제 사례를 보자. 2017년 부산 중구와 강원 횡성군에서는 각각 174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인구는 각각 4만4218명, 4만 6281명이다. 출생아 수가 같은데 횡성군 인구가 조금 더 많기 때문에 출생률은 부산 중구(4.0)가 횡성군(3.8)보다 조금 높다. 반면 합계출산율은 거꾸로 횡성군(0.99)이 부산 중구(0.69)보다 높다. 15~49세 여성이 횡성군(7470명)보다 부산 중구(9084명)에 많이 살아서다(2017년 말 기준).

‘소멸 위험’ 전국 1위인 경북 의성군의 출산율이 전국 상위권인 이유도 여기 있다. 의성군은 인구 중 15~49세 여성 비율이 11.6%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전국 평균 15~49세 여성 비율은 24.2%). 가임기 여성이 적다 보니 인구 대비 출생이 적어도 합계출산율은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출산장려금 덕에 출산율 1위?

출생률과 출산율의 이러한 차이는 출산장려금 정책의 효과에 대한 착시를 낳는다.

중앙일보가 고액(1000만원 이상) 출산장려금을 3년 이상 지급해 온 지자체 28곳의 통계를 확인한 결과, 모두 2012~2017년 사이 출생률이 내려간 것으로 확인됐다.

출산장려금 '1000만원 클럽' 전국 58곳, 과연 효과는(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22649)

반면, 합계 출산율은 대부분의 지역이 전국 평균(1.05)보다 높다. 의성(1.40)도 마찬가지다.

충북 영동군, 경북 영양군, 경남 창녕군 3곳은 이 기간 출산율이 올랐다. 셋 중 상승 폭이 가장 큰 곳은 영동군이다(1.48→1.62). 2012~2017년 의성군은 총 7억5028만원, 영동군은 총 24억 290만원을 출산장려금으로 지급했다. 언뜻 보면 정책이 성과를 낸 듯싶다.

하지만 2012~2017년 영동군의 조출생률은 6.6에서 6.0으로 떨어졌다. 0~4세 인구가 총 1561명에서 1294명으로 17% 줄었다. 이 기간 전국 0~4세 인구도 줄긴 했지만(-7.8%) 영동군의 감소 폭은 2배가 넘는다. 인구 중 0~4세 비율도 3.1%에서 2.6%로 떨어졌다. 출산율은 올랐는데 실제 이 지역에서 태어난 아기와 사는 영유아 숫자는 준 것이다.

여중생도 미혼 여성도 ‘가임 인구’? 

지역별 합계출산율 비교의 문제는 또 있다. 국내 출생아의 98%는 혼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다. 한데 출산율 계산에는 미혼 여성도 포함된다. 결혼을 해야 애를 낳는 게 사회적 현실인데, 출산율은 ‘결혼 안 해도 애를 낳을 수 있다’고 계산하는 것이다.

더구나 출산율 계산의 기준이 되는 ‘가임기 여성’에는 성인 미혼 여성뿐 아니라 15~18세 여중ㆍ고생도 포함된다. 이들의 출산 여부를 따지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타당할지 몰라도, 사회적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그래서 인구학자들은 합계출산율과 별개로 결혼한 여성의 출산율인 ‘유배우 출산율’도 본다.

물론 합계출산율은 국제적으로 통용하는 인구 지표다. 문제는 국가 간 인구 비교에 쓰이는 지표가 그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인구 구성이 상이한 기초단체들의 출산정책 수립ㆍ평가ㆍ홍보에 쓰인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 때 지자체별 출산 정책 경쟁을 유도하겠다며 만든 ‘전국 출산 지도’의 핵심도 합계출산율 비교였다. 이 지도는 각 지역별 15~49세 가임 여성 수를 표시했다가 ‘여성이 출산의 도구냐’는 비난이 빗발치자 급히 폐기됐다. 그러나 각 지자체는 여전히 출산장려금 정책이 성공한 증거로 합계출산율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21일 통계청이 ‘2017년 출생통계’를 발표하자, 기초단체들은 경쟁적으로 ‘장려금 지급 등 출산 정책으로 출산율 상승’ 같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다음 회에는 출산장려금 예산이 필요한 이에게 가는지 살펴본다.

[출산장려금의 불편한 진실]
출산장려금 '1000만원 클럽' 전국 58곳, 과연 효과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22649
② 출산율 높은데 소멸위험 지역 1위? 출산통계의 함정
소녀 가장 장학금 40만 vs '묻지 마' 출산장려금 2680만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29931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그래픽=임해든 디자이너, 유선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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