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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장려 1000만원'의 배신…58곳 죄다 출생률 떨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770명. 지난해 세금에서 1000만~3000만원씩 현금을 받은 아기들이다. 2017년 대한민국 출생아(35만7771명)의 0.5%에 해당한다. 어떤 기준으로 지원을 받았을까. 소득 하위? 저체중아? 국가유공자 자녀? 다 틀렸다. 단지 특정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그간 경쟁적으로 출산장려금을 올려왔다. '인구 감소로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소멸 위험(한국고용정보원 2018 보고서)' '지구 상 유일한 출산율 0명대 국가(통계청 2018년 6월 인구동향)'의 위기를 타개한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XX군수, 7번째 아기 낳은 가정에 2000만원 전달' 식의 언론 보도가 익숙할 정도다.

한데 이런 수천만 원의 장려금은 정말 출산을 '장려'했을까? 각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장려금 지출액과 실제 인구통계를 통해 비교해 봤다.

출산장려금의 불편한 진실

출산장려금 기준 지역마다 제각각

출산장려금(또는 양육비)에 관한 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전국 140여 곳. 이중 아동 1인당 지급액이 1000만원 이상(분할해서 지급하는 경우 총액)인 지자체는 총 58곳(2018년 7월 기준)이다. 해당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인한 결과, 실제 1000만원 이상의 장려금을 받은 아기는 2017년 1770명, 2018년 상반기 1116명이었다.

이를 지도 위에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출산장려금은 단순히 자녀를 많이 낳는다고 많이 받는 게 아니다. 어디서 낳느냐가 더 중요하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10번째 자녀를 낳을 때 받는 장려금(50만원)보다, 경북 봉화군에서 2번째 아이를 낳았을 때 받는 장려금(1000만원)이 더 많다. 액수 기준으로 보면 경남 창녕군에서 셋째(2680만원), 강원 양양군에서 넷째(1900만원)로, 혹은 전남 완도군에서 다섯째(2050만원) 아이를 낳았을 때가 많았다.

출산장려금 많이 주면 아기를 많이 낳을까

고액 장려금을 준 지역의 출산은 늘었을까? 장려금 액수를 올린다고 1~2년 만에 출산이 늘기는 쉽지 않다. 이를 고려해 1000만원 이상 출산장려금을 3년 이상 지급해 온 지자체 총 28곳을 따로 집계해, 2012년과 2017년의 조출생률을 비교했다.

조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태어난 아기 수를 말한다. 2017년 한국의 조출생률은 7.0이다. 지난해 한국인 1000명당 아기 7.0명이 태어났다는 의미다. 참고로 전 세계 평균은 18.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11.7이다(2016년 현재).

고액 출산 장려금을 3년 이상 준 지자체 28곳 중 5년 전보다 조출생률이 올라간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조출생률이 전국 평균(7.0)보다 높은 곳도 충북 청주시·진천군, 충남 당진시·서산시, 전남 영암군 5곳에 불과했다. 이 5곳은 출산장려금 덕분에 평균 이상 출생률을 유지한 걸까.

충북 청주시는 오송생명과학단지와 오창과학산업단지를 보유하고 있고, 최근 청주테크노폴리스에 SK하이닉스의 투자를 유치했다. 진천군은 충북의 혁신도시다. 2013년부터 정보통신정책연구원·한국교육개발원·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등 공공기관이 옮겨오면서 젊은 인구가 늘었다.
충남 당진시에는 현대하이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등 대형 철강회사가 많고, 서산시에는 현대파워텍∙SK이노베이션 등이 입주한 서산오토밸리 산업단지가 있다. 전남 영암은 현대삼호중공업이 있는 삼호읍이 그간 인구 증가를 견인했다. 하지만 최근 2~3년 새 조선업이 불황을 겪자 출생률도 크게 떨어졌다.

결국 5개 지역 모두 고액의 출산장려금 덕에 출생률이 높다고 보긴 힘들다. '공공기관 이전'과 '대기업 일자리' 같은 외부 변수가 크기 때문이다.

출산보다 이사 장려?…너도나도 '1000만원 클럽'

데이터 분석 결과 수천만 원의 고액 출산장려금의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반대로 "별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2016년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그런데도 고액 출산장려금을 주는 지자체는 계속 늘고 있다. 2018년 들어서만 지자체 9곳이 출산 장려금을 1000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인천시 연수구(넷째 1000만원), 경기 안산시(넷째 1216만원), 시흥시(넷째 1000만원), 여주시(셋째 1000만원), 충남 보령시(넷째 1500만원), 전북 남원시(셋째 1000만원), 장흥군(다섯째 1000만원), 전북 무주군(셋째 1000만원), 경북 청도군(넷째 1500만원)이 올해 새로 '1000만원 클럽'에 가입한 곳들이다.

지자체들이 별 효과도 없는 고액 출산 장려금을 주겠다고 앞다퉈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산 장려보다는 옆 동네에서 사람(출산할 이)을 데려오기 위한 용도라는 지적도 있다. 이유는 이렇다. 지방재정법은 도세의 27%를 교부금으로 각 시·군에 나눠주도록 하고 있다. 시·군 간의 살림살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인구다. 인구가 줄면 교부금도 준다. 이 때문에 수천만 원의 출산 장려금을 줘서라도 인구 유치에 나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을 받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보면 '새로운 탄생의 장려'보다 '특정 지역의 인구 유지'를 위해 돈이 쓰이는 셈이다.

다음 회에는 출산율이 높아도 인구는 줄어드는 '통계의 함정'을 살펴본다.

[출산장려금의 불편한 진실]
① 출산장려금 '1000만원 클럽' 전국 58곳, 과연 효과는
② 출산율 높은데 ‘소멸위험’ 1위? 출산율 통계의 함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26172) 
③ 소녀가장 장학금 40만 vs '묻지 마' 출산장려금 2680만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29931)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그래픽=임해든 디자이너, 유선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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