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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 나비효과...바다는 사막화하고 사람은 '영양실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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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40년. 사방이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옥수수의 지평선이다. 다른 농작물은 보이지 않는다.

옥수수밭 상공에 돌연 인도 공군 소속의 드론이 출현했다. 15살 톰과 10살 머피는 아버지인 쿠퍼와 차를 타고 가다가,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드론을 발견하고 이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태양전지를 얻어 농장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어디로 방향을 틀어도 옥수수다. 밀림 같은 밭을 헤치고 셋은 결국 드론을 해킹하는 데 성공했다. 2014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과학소설(SF)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이다.

지난 4월 9일, 아르헨티나 라파엘라 지방의 한 옥수수 농장.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9일, 아르헨티나 라파엘라 지방의 한 옥수수 농장. [로이터=연합뉴스]

영화 속 배경이 된 옥수수밭은 대기와 토양 오염으로, 재배 가능한 농작물이 옥수수밖에 남지 않은 디스토피아적 미래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먼 미래 속 상상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대기오염으로 인해 농작물이 보이는 이상징후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하버드 연구진, 2050년 CO2 농도 550ppm 넘어서..."식물 영양 성분 이상" 경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의 농도 증가로 인해, 전 세계 인구의 '인체 영양(human nutrition)'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의 매튜 스미스 교수팀은 27일(현지시간) '인간이 배출하는 CO2가 전 세계 인구의 인체 영양에 미치는 영향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같은 날, 국제 과학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됐다. 대기 중의 과다한 CO2로, 농작물이 함유한 영양성분에 이상이 생겨, 같은 양을 먹어도 아연ㆍ단백질ㆍ철분 등 인체에 필수적인 영양소의 3~17%가 결핍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eCO2)는 식물의 영양 성분을 감소 시킨다. 철ㆍ아연ㆍ식이 단백질의 3~17%가 감소될 수 있다. [AP=연합뉴스]

연구팀에 따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eCO2)는 식물의 영양 성분을 감소 시킨다. 철ㆍ아연ㆍ식이 단백질의 3~17%가 감소될 수 있다. [AP=연합뉴스]

연구에 따르면 2016년 대기 중 CO2 농도는 400ppm을 넘어섰다. 연구진은 "엄격한 CO2 경감 대책 없이는, 적어도 2100년에는 대기 중 CO2 농도가 최대 940ppm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현재 추세대로면 30년 내 550ppm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했다.

이런 대기 중 CO2 농도 증가는 인간에게 크게 두 가지 경로로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O2가 기후를 변화시켜 식량 생산성에 피해를 줄 수도 있으며, 주요 농작물의 영양 구성성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유럽 최대의 석탄 발전소로 알려진 폴란드 베우하투프의 석탄발전소가 2009년 3월 7일, 연기를 내뿜고 있다. 연구진은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30~80년 이내에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550ppm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2100년에는 940ppm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 최대의 석탄 발전소로 알려진 폴란드 베우하투프의 석탄발전소가 2009년 3월 7일, 연기를 내뿜고 있다. 연구진은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30~80년 이내에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550ppm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2100년에는 940ppm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연구진은 "전 세계 인구는 필요 영양소의 대부분을 농작물로부터 얻고 있다" 며 "식이 단백질의 63%ㆍ철분 81%ㆍ아연 68%를 식물자원으로부터 얻는 만큼, 식물 영양 성분의 감소는 인류의 영양결핍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기 중 CO2 농도가 550ppm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할 때, 전 세계적으로 1억7500만 명이 아연 부족을 겪게 될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1억2200만명은 단백질 부족 현상을, 14억명에 해당하는 임산부와 5세 미만의 아동은 철분 부족으로 빈혈 등 질환을 겪게 될 것으로 조사됐다.

하버드 연구진이 밝힌 대기중 CO2 증가로 인한 영양성분 결핍 지도. 단일 국가로는 인도가 가장 큰 피해국으로 나타났으며 그 외 남부아시아ㆍ동남아시아ㆍ사하라 이남을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의 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됐다. [자료 네이처 기후변화]

하버드 연구진이 밝힌 대기중 CO2 증가로 인한 영양성분 결핍 지도. 단일 국가로는 인도가 가장 큰 피해국으로 나타났으며 그 외 남부아시아ㆍ동남아시아ㆍ사하라 이남을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의 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됐다. [자료 네이처 기후변화]

CO2의 나비효과...해양생물 33% 감소로 이어질수도 

CO2가 미치는 영향은 지상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대 연구진이 논문을 발표한 27일, UC샌디에이고 대학 연구진은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수심 30~150m 사이에 사는 '심해 산호'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논문을 통해 밝혔다. 그간 깊은 바닷속 산호는 연안의 산호에 비해 해수 온도 상승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생각돼 왔다.

그러나 연구진이 남태평양의 팔라우 섬을 비롯한 태평양 열대지역 세 군데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한 결과 심해 산호 역시 해수 온도 상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호가 죽어 발생한 탄산칼슘 성분이 해저 표면을 사막화하는 '백화현상'이 심해에서도 관측됐기 때문이다. 정해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깊은 곳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 살아가던 산호는 오히려 작은 온도 변화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07 년 6월 촬영된 하와이 북서부의 산호초 지대. 2014년과 2015년 발생한 해양열파로 하얗게 표백된 산호들이 보인다. CNN과 UC샌디에이고대 연구진은 산호가 해양생물 서식의 기초가 되는 자원이며, 해수온도 상승으로 현재와 같이 백화현상이 진행될 경우 해양생물 다양성의 25~33%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 했다. [AP=연합뉴스]

2007 년 6월 촬영된 하와이 북서부의 산호초 지대. 2014년과 2015년 발생한 해양열파로 하얗게 표백된 산호들이 보인다. CNN과 UC샌디에이고대 연구진은 산호가 해양생물 서식의 기초가 되는 자원이며, 해수온도 상승으로 현재와 같이 백화현상이 진행될 경우 해양생물 다양성의 25~33%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 했다. [AP=연합뉴스]

이런 해수 온도의 상승에도 CO2가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순일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CO2로 인한 온실효과는 지표면뿐만 아니라 바다 표면 온도도 상승시킨다"고 설명했다. 달궈진 지표면이 또다시 대기 중으로 열을 방출해 해수 온도도 함께 높아지는 순환작용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산호는 해양조류와의 공생을 통해 바닷속 생태계를 유지하는 핵심 자원인 만큼, CO2와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한 생물 다양성 감소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CNN 역시 28일, 다큐멘터리 'Race to Save the Reef'를 통해 "호주 북동부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일대의 산호를 관찰한 결과, 대량 멸종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이 지역의 산호를 45년간 관찰한 산호초 전문가 '찰리 베론'은 "산호초가 없어지면 25~33%의 해양생물들은 사라지게 된다"며 "이는 대혼란을 일으키고 생태계를 무너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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