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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일본인 석방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02년엔 '신뢰확인' 관계 급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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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억류됐던 일본인이 26일 밤 전격 석방이 발표되면서 꽉 막혔던 북·일 교섭에 돌파구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002년 억류됐던 일본 언론인이 석방된 뒤 약 7개월여만에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의 첫 북·일정상회담이 열렸던 전례에 비춰볼 때, 북·일 교섭에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가 "정부로서 전력 대응"...북·일 접촉 시사 #2002년에도 '신뢰확인용' 日 기자 석방 #아베 총재선 출마 시기에 '전격 발표' #'폼페이오 방북 취소' 시기와도 맞물려

그동안 억류 일본인을 두고선 북·일 간에 어떤 교섭이 있었는지는 밝혀진 게 없다. 통상적인 접촉 채널인 베이징 대사관을 통한 물밑교섭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7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석방 결정과 관련 “사건의 성질상 상세한 답변은 피하겠다”면서도 “정부로서 전력을 다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해 북·일 간 모종의 움직임이 있음을 시사했다.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왼쪽)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 [중앙포토]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왼쪽)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 [중앙포토]

지난 1999년 11월 북한에 억류됐던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출신의 스기시마 다카시는 2년 2개월만에 풀려났다. 북한에서 사진촬영 등을 했다는 이유로 스파이 혐의를 받고 억류됐다.

그가 석방된 것은 당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였다. 북한 측 교섭자로 나선 미스터 엑스(X·당시엔 ‘김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추정)가 신뢰할만한 인물인지 확인하기 위해, 당시 일본측 교섭자였던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스기시마의 ‘무조건 석방’을 요구했다.

“어느 정도 결정권을 가진 사람인지 보여달라”는 요구에 북한은 2달 뒤인 2002년 2월 스기시마를 조건없이 석방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간 교섭은 급물살을 탔고, 7개월 뒤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평양에서 첫 북일정상회담을 열었다. 일본인 석방 뿐 아니라 북·일간에는 이미 플러스 알파가 진행중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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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석방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시점도 눈길을 끈다. 26일엔 아베 신조(安倍信三) 일본 총리가 다음달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를 발표했다. 자국민 석방 소식은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에게 플러스로 작용할 뿐 아니라, 향후 북·일교섭이 잘 되면 납치문제 해결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로도 이어진다. 따라서 아베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북·일 간 교섭을 계속하겠다는 북한의 신호로도 읽혀진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가고시마(鹿兒島)현에서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가고시마(鹿兒島)현에서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교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시킨 직후라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폼페이오의 방북이 무산된 북한이 또다른 돌파구로 일본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2년 스기시마를 풀어준 시점은 미국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직후였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환갑 생일 (2월 16일)을 앞두고 있었고, 이번엔 9.9절 창건기념일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다만 2002년과 달리 현 상황은 납치문제에 대한 양측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북·일교섭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 납치자의 전원 생환을 요구하는 일본에 반해 북한은 최근까지도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스가 관방장관은 이번 건이 납치문제나 북·일간 교섭에 활용될 가능성 등과 관련 “구체적으로 어떻게될지 명확하지 않다. 일본은 납치문제를 포함한 북한을 둘러싼 모든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대응한다는 점에 대해선 변함이 없다”고 구체적 언급을 꺼렸다.

아사히 신문은 북일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스기모토가 일본 정부와 관계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면서 "북일관계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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