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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교감과 부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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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국회의원은 잘못하면 고쳐 다시 사랑 받고 싶은 심리가 있다.” “자기 반성에서 비롯된 입법 제안이다.”

이달 초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현장의 일본식 표현을 바로잡자는 취지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게 알려지자 정치권에서 나온 말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의원은 지난 2월 국회 질의 도중 견제라는 뜻의 일본어인 ‘겐세이’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장본인이다. 그가 발의한 개정안 핵심 중 하나는 ‘교감(校監)’ 호칭을 ‘부교장(副校長)’으로 고치자는 거다. ‘감(監)’이 포함된 명칭은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에서다. 겐세이 발언으로 일으킨 물의를 일제 잔재 청산으로 물타기 하려는 의도로 읽힐 법하다.

이 의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교감 명칭 변경을 놓고 교육계가 시끄럽다. 교사와 일반직 교육공무원이 부교장제가 옳으니 그르니 하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다. 교사를 대변하는 한국교총은 그제 성명에서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학교 행정실 직원 등 일반직을 대변하는 교육청공무원노조는 개정안 철회 서명운동으로 맞선 상태다.

교감은 학교에서 궂은일을 도맡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불린다. 학교의 활력이 교감 하기에 달린 셈이다. 문제는 이런 교감을 놓고 벌어지는 대립이 단순히 ‘명칭 싸움’만은 아니란 점이다. 부교장은 현행 법률에 없는 용어다. 하지만 일부 사립학교에서 부교장 호칭을 쓴다. 민족사관고는 학사 부교장과 기획 부교장에게 학교 운영 실무를 맡긴다. 염수정 추기경은 과거 서울 성신고 부교장을 지냈다. 교감의 영문표기는 ‘vice principal’이다. 통상의 용례로 재번역하면 부교장이다. 뭐라고 부른들 그게 그거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결국 속내를 들여다보면 ‘권한 싸움’이다. 교총은 “학교 경영의 책임 있는 역할을 맡고 있는 교감에 대해 지위에 걸맞은 명칭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교장으로 바꿔 ‘학교 경영 책임자’의 지위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교육청노조는 ‘학교 관료화’ ‘행정 처리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란 이유로 반발한다.

부교장제 전환 문제는 교사와 일반직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다.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 바탕에는 “한 울타리 안에서 근무하면서도 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일반직의 피해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이 한 울타리에 있는 목적은 같다. 학생과 교육을 위해서다. 교총과 교육청노조는 자명한 이 사실부터 다시 새겼으면 한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