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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64㎝ 김지연, 1m81㎝ 만리장성 허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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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이 22일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다.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자카르타 =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이 22일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다.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자카르타 =김성룡 기자

평균 신장 1m67㎝의 한국이 1m80㎝의 ‘장신 군단’ 중국을 무너뜨렸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셈이다.

여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2연패 #결승전서 중국 45-36으로 물리쳐 #에이스 김지연 "동생들에게 고맙다” #윤학길 코치 딸 윤지수도 분전 #첫 출전 최수연 고비마다 맹활약

김지연(30·익산시청)-황선아(29·익산시청)-최수연(28·안산시청)-윤지수(25·서울시청)로 구성된 한국 여자펜싱 사브르 대표팀은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중국을 45-36으로 물리쳤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일본을 45-25로 완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예상대로 숙적 중국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2014년 인천 대회에서도 한국은 결승전에서 중국을 물리쳤다. 당시 한국은 중국의 아시안게임 3연패를 저지했다. 2018~19시즌 단체전 세계랭킹에선 한국은 4위, 중국은 6위다. 하지만 지난 6월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선 중국이 승리했다. 한국과 중국 모두 복수할 좋은 기회였다. 중국은 지난 19일 열린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치엔 지아루이와 사오 아키가 금, 은을 휩쓸었다.

경기 전 피스트 위에 나란히 선 한국과 중국 선수들의 키 차이는 확연했다. 중국 최장신 사오 야키(1m81㎝)와 한국 김지연(1m64㎝)은 키는 17㎝나 차이가 났다. 플뢰레, 에페보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사브르 경기에선 특히 빠른 발놀림이 중요하다. 한국 선수들은 빠른 스텝을 이용한 ‘발 펜싱’으로 덩치가 큰 대신 움직임이 둔한 중국 선수들을 압도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이 22일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다.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서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자카르타 =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이 22일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다.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서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자카르타 =김성룡 기자

한국 선수들이 발만 빠른 것은 아니었다. 상대의 찌르기 기술을 쳐내는 정교한 손기술을 연마했다. 아시안게임 결승 상대로 중국이 올라올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비해 ‘콩트르 파라드(막고 찌르기)’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뒤로 물러나면서 상대를 유인한 뒤 공격해오는 검을 쳐내고 빠르게 역습하는 이 기술이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14-8로 앞선 상황에서 한국의 세 번째 주자 최수연이 중국의 양 헝유의 칼을 부러뜨리면서 득점에 성공했다. 최수연이 뒤로 물러나는 척하면서 강하게 밀고 나오자 양 헝유는 역동작에 걸려 버렸다. 몸통을 향해 들어오는 최수연의 힘이 실린 공격을 애써 막아봤지만, 칼이 두동강 나버렸다.

심리전에서도 한국이 한 수 위였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선 김지연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중국 사오 야키에게 4점을 먼저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마스크를 벗고 호흡을 가다듬은 김지연은 내리 5점을 따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김지연은 또 20-14로 앞선 상황에서 개인전 준결승 상대 치엔 지아루이에게 6점을 내주며 동점을 허용했다. 흔들렸던 김지연은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한 뒤 머리를 다시 묶고 경기에 나섰다. 상대에게 유리한 흐름을 노련하게 끊은 것이다. 김지연은 이후 내리 5점을 따내며 25-20으로 달아났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이 22일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다.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자카르타 =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이 22일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다.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자카르타 =김성룡 기자

사브르팀의 에이스 김지연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태권도와 육상으로 다져진 김지연은  ‘발 펜싱’의 진수를 보여주며 런던 올림픽에서 세계 1~2위를 모두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선 팀 동료 이라진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고, 이번 대회 개인전에서도 중국 치엔 지아루이에게 밀려 동메달에 그쳤다. 하지만 단체전에선 두 대회 연속 마지막 주자로 나서 승리를 확정지었다. 김지연은 “개인전 동메달이 무척 아쉬웠다. 이번 대회가 나에겐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 꼭 금메달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동생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무릎 부상을 안고 뛴 윤지수는 4년 전에 이어 팀의 막내로 금메달의 기쁨을 누렸다. 윤지수는 윤학길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코치의 딸이다. 프로야구에서 아직도 깨지지 않는 100완투의 전설을 쓴 아버지의 힘과 정신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평가다. 윤지수는 “개인전 8강에서 탈락한 뒤 아버지와 아직 통화를 못했다. 내가 부담을 가질까 봐 그러신 것 같다”며 “한국에 돌아가 부모님께 금메달을 걸어드리고 싶다”고 했다.

아시안게임에 처음 출전한 최수연은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 소리로 중국의 기를 죽였다. 최수연은 “지난해 11월부터 우리 팀은 24시간 붙어 지낸다. 단합력만큼은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결승전에서 후보 선수로 경기를 지켜본 황선아도 "일주일에 3번씩 곱창을 먹으며 팀워크를 다졌다"고 했다.

정진선(34·화성시청)-박경두(34·해남군청)-권영준(31·익산시청)-박상영(23·울산시청)이 나선 남자 에페 대표팀은 이날 단체전 준결승에서 중국에 41-45로 아깝게 져 동메달을 차지했다.

◆사브르

펜싱 세부 종목은 에페, 사브르, 플뢰레 등 3가지다. 사브르는 상체(팔, 머리 포함)를 공격할 수 있으며 찌르기와 베기 모두 가능하다. 에페와 플뢰레는 찌르기만 가능하다. 플뢰레는 머리를 제외한 상체만 찌를 수 있고, 에페는 전신을 공격할 수 있다.

자카르타=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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