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9개월…10명 중 1명만 심리치료 받아

중앙일보

입력 2018.08.21 11:09

포항지진이 발생한 지 2달 뒤인1월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출입문에 폐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포항지진이 발생한 지 2달 뒤인1월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출입문에 폐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진으로 집이 크게 파손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두 달 넘게 대피소에 살았습니다. 과거에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끼운 남편이 집에 혼자 있다가 지진을 겪었는데 도저히 집에 못 들어 가겠다고 했어요."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사는 김영애(68·여) 씨는 아직도 '그 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느닷없이 닥친 지진을 겪은 이후, 김 씨 부부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지진이 왔을 때 남편은 침대를 세워 놓고 바닥청소를 하고 있었다. 진동으로 흔들리던 침대는 남편을 덮쳤다. 김 씨가 퇴근해 귀가할 때까지 몇 시간을 침대에 깔린 채 있어야 했다. 김 씨는 "임시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정식으로 치료를 받으려면 큰 병원에 가서 자비로 치료를 받으라고 해서 아직 고민"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98%가 "지진으로 정신적 충격 받아" 

지난해 포항 지진 피해자들이 대부분 김씨 부부처럼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북 포항시는 지난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지진 피해가 심했던 북구 장량동과 흥해읍 주민 505명을 대상으로 ‘재난심리지원에 대한 포항시민 인식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인한 심리 상담 지원을 위해서다.
조사 결과 응답자 79.8%가 재난(지진·태풍·홍수 등)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그중 93.8%가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꼽았다.

포항시에서 지난 6월말~7월말 실시한 지진 재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 결과. [사진 포항시]

포항시에서 지난 6월말~7월말 실시한 지진 재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 결과. [사진 포항시]

지진으로 인한 충격 정도에 관한 질문에서는 매우 큰 충격이 29.8%, 강한 충격이 42.4%로, 보통(10.7%), 약한 충격(15.9%), 충격을 받지 않음(0.5%) 보다 많았다. 충격이 있었다고 답한 응답자 중 42.9%는 지진 후 심리적 불안감과 후유증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심리 치료를 받았다고 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 중 10명 중 1명뿐(10.4%)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만족도와 관련한 질문에는 불만족이 52.2%로 절반을 넘었다. 불만족 이유로는 '재난 심리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통보가 없음', '일회성인 것 같다', '심리 안정이 잘되지 않았다' 등 전문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포항시에서 지난 6월말~7월말 실시한 지진 재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 결과. [사진 포항시]

포항시에서 지난 6월말~7월말 실시한 지진 재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 결과. [사진 포항시]

특히 재난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의 극복을 위해 가장 도움이 될 방안으로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도움 된다'가 전체 응답자 중 27.0%로 가장 높았지만, 61.6%는 재난 심리지원 자체를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항시, 2022년 재난 트라우마 치유센터 유치 노력 

포항시에 따르면 아직도 91가구 208명(20일 기준)이 지진대피소인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살고 있다. 포항시에서 임시로 흥해읍에 심리지원센터를 개소해 북구 보건소 소속 상담사가 활동 중이지만 재난 전문 상담 센터는 없다. 체계적인 재난 트라우마 센터 설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포항 지진 실내대피소인 북구 흥해읍의 흥해실내체육관. [뉴스1]

포항 지진 실내대피소인 북구 흥해읍의 흥해실내체육관. [뉴스1]

재난 심리지원이란 지진, 태풍 등 각종 재난으로 심리적 충격을 받은 사람의 정신적·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고 후유증을 예방해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시하는 전문 심리상담이다. 필요하면 전문병원에 의뢰해 심리상태가 악화하는 것도 예방한다.

포항시는 지진대책국을 신설한 이래 지난 4월 3대 전략(▲심리지원 관리체계 구축 ▲시민 중심 맞춤형 심리 케어 ▲주민 참여형 홍보)을 수립해 트라우마 치유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포항시에서 지난 6월말~7월말 실시한 지진 재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 결과. [사진 포항시]

포항시에서 지난 6월말~7월말 실시한 지진 재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 결과. [사진 포항시]

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설문조사 등 사전용역을 완료했다. 내년에 경북도와 정부 부처 등에서 국비를 지원받아 본 용역에 들어간 뒤 2022년에는 문을 열 계획이다.

허성두 지진대책국장은 “한반도는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며 "트라우마 치유센터가 문을 열면 시민들은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지진 트라우마에서 일찍 벗어나 일상으로 조귀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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