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마다 1조원 기업 탄생…中스타트업 키운 '996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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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는 중국 기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창의력이 없는 짝퉁 기업만 넘치고, 엄청난 자국 시장을 외국 기업에는 닫아걸었기 때문에 잘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4년 여름 중국 베이징(北京) 샤오미 본사 방문을 기점으로 이달 초 베이징 VIPKID 본사까지 중국의 여러 유니콘 스타트업들을 직접 방문해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달 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VIPKID ‘2018년 전략발표회’에서 신디 미 VIPKID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임정욱 센터장]

이달 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VIPKID ‘2018년 전략발표회’에서 신디 미 VIPKID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임정욱 센터장]

그 이후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이제는 10억불(1조1000억원) 가치가 넘는 유니콘이 흘러넘치는 생태계가 됐다. 중국 기업을 분석하는 후룬연구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중국에선 유니콘 기업이 52곳이 새로 탄생해 총 162개 회사가 됐다. 3.5일에 하나씩 새로 유니콘이 등장하는 추세다.

서방 미디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중국 신성장 기업들이 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새로운 기업이 등장해 이처럼 쑥쑥 큰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기업 생태계가 역동적이란 의미다. 도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다음은 내가 느낀 중국 유니콘 스타트업 생태계의 특징이다.

1. 잘 될 것 같은 분야에는 무한 경쟁이 일어난다.

2015년 공유 자전거 붐이 일어난 뒤 중국에선 전국적으로 수백개의 공유 자전거 스타트업들이 생겨났다. 거리에는 온갖 종류의 색깔과 무늬로 치장한 공유 자전거가 넘쳐났다. 이처럼 중국의 창업자들은 사업 기회가 보이기만 하면 무섭게 달려든다. 대다수의 기업이 망하는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포와 모바이크가 조 단위 가치를 자랑하는 유니콘 기업이 됐다.

이처럼 성역없이 기회가 있는 모든 분야에서 창업이 일어나면서 유니콘이 금융·자동차·전자상거래·의료·물류·하드웨어·교육·부동산 서비스·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등 기회가 보이는 모든 분야에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친환경 전기자동차 분야에서는 중국의 테슬라를 꿈꾸는 회사가 NIO, 샤오펑 등 수십 개다. 상상을 초월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니콘 기업이 나온다.

중국 베이징 시내에 넘쳐나는 공유 자전거 모습. [사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중국 베이징 시내에 넘쳐나는 공유 자전거 모습. [사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2. 무섭게 일하는 '996' 문화

샤오미에 갔다가 매일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 전 직원이 일한다고 해서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그것도 토요일까지 그렇게 일한다고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간 일한다는 '996'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이렇게 주말까지 밤낮없이 일하는 것이 중국스타트업의 일반적인 문화다.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에 별 불만 없이 이렇게 일한다고 한다.

대신 성과에 대한 보상도 후하며 직원들을 위한 복지도 잘 되어 있다. 오죽하면 지난 1월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투자자인 마이클 모리츠도 "격렬하게 일하는 중국 엔지니어들에게 배우지 않으면 실리콘밸리가 중국에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을까.

3. 성장과 기업 가치에 집착한다.

한국에서는 많은 돈을 투자받더라도 기업가치가 얼마라고 발표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중국 스타트업들은 실리콘밸리처럼 투자를 받을 때마다 기업 가치를 같이 내세우고 그것을 키우는 것을 즐긴다. 언론들도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로 줄을 세우고 평가한다. 중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투자금액과 기업 가치로 자존심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엄청난 적자가 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은 회사의 매출을 늘리는 데만 집중한다. 모두 공격적으로 돈을 투자해주는 투자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4. 무섭게 인력을 늘린다.

3년 전 중국 선전(深圳)에 갔을 때 드론회사인 DJI의 직원 수가 3000여명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올해 초 선전에 다시 방문해 DJI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직원 수가 1만1000여명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1대1 영어 화상교육을 제공하는 유니콘 교육 스타트업인 VIPKID는 설립한 지 이제 겨우 4년이 넘은 회사다. 그런데 직원 수가 1만명이 넘는다. 텔레마케팅 등을 위해 공격적으로 사람을 뽑은 덕분이다.

중국의 우버인 디디추싱의 직원 수도 이제 1만명이 넘는다. 성장을 위해 공격적으로 인재를 확보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덕분에 중국의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좋은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5. BAT의 투자와 인수로 성장한다.  

중국에는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라운드'라는 말이 있다.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반드시 텐센트·알리바바·바이두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는 단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밖에 샤오미, 메이퇀, 바이트댄스 등 급성장하는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또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거액에 이들을 인수해준다. 또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이들이 만든 플랫폼이 스타트업이 급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되어 준다. 큰 기업들이 작은 스타트업을 눌러서 없애기보다 투자와 인수를 통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성장하는 상생의 생태계다.

중국 선전에 위치한 텐센트 본사. [사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중국 선전에 위치한 텐센트 본사. [사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6.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이제 중국의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중국시장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해외 시장에 진출해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중국 내에서 '도우인'이란 15초 동영상 앱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바이트댄스는 같은 제품을 '틱톡'이란 이름으로 일본, 한국, 동남아 등에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오포와 모바이크 등 공유 자전거 스타트업들은 미국·유럽·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하고 있다. VIPKID도 최근 한국 등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고 선언했다.

베이징의 VIPKID 본사 사무실 전경. [사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베이징의 VIPKID 본사 사무실 전경. [사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물론 중국의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성장 욕심에 무리하게 거액을 투자받았다가 좌초한 IT 회사 러에코 같은 사례나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선택적으로 철수하고 있는 오포 등 공유 자전거 회사들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사업 기회가 보이면 공격적으로 달려들고, 거액을 투자받아서 성장한 뒤 빠르게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중국 창업가들의 욕심과 기세는 본받을 만하다. 중국 유니콘 스타트업 생태계의 역동성이 본고장인 실리콘밸리를 능가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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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곳곳에서 창업가들이 촘촘한 규제와 씨름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조금만 적자가 나도 부실기업이 아니냐고 손가락질을 받는 한국에서는 중국처럼 유니콘 기업들이 나와 고속 성장을 하기는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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