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안방보험은 자국 정부의 외국투자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이후 미국 부동산 쇼핑에 열을 올렸다. 그중 하나가 2014년 미국 호텔로는 역대 최고가인 19억5000만 달러(약 2조2000억원)에 사들인 뉴욕 맨해튼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다.
뉴욕도 미·중 무역전쟁 불똥 #중국 정부, 미국 부동산 투자 통제 #아스토리아 등 16개 통매각 추진 #맨해튼 집값 작년보다 19% 하락 #철강값 올라 건축업자들도 울상
그러나 중국 정부가 미·중 무역전쟁 이후 위안화 가치 안정 등을 위해 특히 미국 부동산 투자를 통제하고 나서자 최근 안방보험은 월도프 아스토리아를 포함해 인터콘티넨털 시카고와 포시즌스 워싱턴DC 등 미국 내 16개 호텔을 패키지로 묶어 시장에 내놓았다. 가격은 제시하지 않은 채 조건만 잘 맞으면 패키지 또는 낱개로 팔아치우겠다는 심산이다. 중동의 국영펀드들이 특히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국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과 무역분쟁을 벌인 지 반 년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에서 그 여파가 실물경제에 슬금슬금 나타나고 있다. 무역전쟁 이외의 요인까지 결합한 복잡한 형태다. 그중에서도 중국 기업 소유의 매물이 쏟아지고 있는 맨해튼 빌딩 시장에서는 치열한 물밑 신경전이 한창이다.
이미 데이터상으로도 이 같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미국 부동산 조사매체 리얼캐피털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중국의 보험사와 복합기업을 비롯한 투자자들은 올 2분기 미국 상업용 부동산 12억9000만 달러어치를 매각했지만 부동산 구입액은 1억2620만 달러에 그쳤다. 중국 투자가 분기 기준으로 순매도로 돌아선 것은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HNA그룹과 그린랜드홀딩그룹도 이른 시일 내 부채 규모를 줄이라는 중국 정부의 규제에 맞추기 위해 자산 매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위안화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현상도 이 같은 중국 정부의 규제 속도에 불을 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을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이 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그 난기류가 미국 부동산 시장을 덮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와중에 HNA그룹은 미국 내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로부터 맨해튼 트럼프 타워 근처에 있는 빌딩을 매각할 것을 요구받았다. CFIUS는 외국인 투자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심사하는데, 매각 권고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HNA그룹은 2016년 3번가에 있는 이 빌딩의 지분 90%를 매입했다. 당시 이 빌딩 가치는 4억6300만 달러였다.
중국 기업만 손을 터는 게 아니다. 중국 개인투자자들도 지갑을 닫고 있다. 특히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EB-5에 투자하는 중국인이 최근 급감하고 있다. 50만 달러(약 5억6000만원) 이상을 내고 EB-5 비자에 투자하게 되면 가장 빠른 시일 내 미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연간 1만 개로 제한된 EB-5 비자 신청자의 대부분이 중국인이었고, 중국인 투자액은 한때 4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 1000만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맨해튼 서쪽의 신규 콘도가 밀집한 허드슨 강변은 중국인들이 ‘묻지마 쇼핑’을 하던 지역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지난 11일 46가 콘도에서 250만 달러에 달하는 투베드룸 콘도를 매각하기 위해 오프하우스 행사를 연 아르테스부동산 수지변 대표는 “예전에는 10명씩 줄지어 들어오던 중국인들이 거의 사라지고 뉴욕 현지 유대인 부동산업자와 중동 쪽 바이어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맨해튼 콘도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가격도 하락세다. 더글러스 엘리먼 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2분기 맨해튼 신규 콘도의 평균 매매가격이 267만 달러(약 3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차이나타운으로 변모한 퀸스의 플러싱 일대에서도 중국인들의 ‘큰손’이 작아지고 있다. 중개업자 애니 문은 “여전히 중국인들이 매물을 사들이고 있지만 현금으로 한꺼번에 지불하는 중국인은 대폭 줄었다”고 전했다.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부과된 관세 때문에 건축자재 값이 상승하면서 이미 맨해튼에 건물을 짓고 있는 건축업자들이 울상이다. 수입산 철강에 25%의 관세가 부과됐지만 미국산·수입산을 불문하고 가격이 올랐다. 콘크리트 보강용 철근의 경우 관세 부과 이전에 비해 35% 정도 가격이 인상됐다. 맨해튼 22가에서 럭셔리 콘도를 짓고 있는 크로스토퍼 메스바는 “인상된 자재 가격은 고스란히 건설업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미국 내 연구그룹인 트레이드 파트너십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철강 관세에 따른 비용 증가로 제조업에서만 3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전망”이라며 “결국 미국 GDP 성장 속도의 둔화로 이어지면서 경제에 고통을 안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알루미늄 관세 올리자 뉴요커 맥주값 부담 늘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무역전쟁 때문에 소비자 물가가 치솟는 극단적인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완전히 회복된 미국 경제가 무역분쟁에 따른 영향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언제든 변수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무역전쟁에 따른 소비자물가 추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뉴요커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에도 아직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무역전쟁에 영향을 받는 상품의 가격 변동폭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알루미늄 캔을 사용하는 맥주와 드링크 제품 가격이 미미한 정도로 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구매를 망설일 정도는 아니다. 새뮤얼애덤스 맥주를 생산하는 보스턴비어는 하반기에 2% 인상을 예고했다. 육류 가격은 확실히 내림세다. 수출이 막힌 육류 제품이 내수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현재 하락폭이 5% 수준이지만 최대 12%까지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멕시코로 4분의 1이 수출되던 치즈와 같은 유제품도 멕시코 정부의 보복관세로 미국 시장 내 공급 과잉이 예상된다.
이처럼 식재료 가격이 떨어지면서 미국 레스토랑 업계에서는 80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옥수수·쇠고기·돼지고기·사과 등에서 아낄 수 있는 비용이 많았다.
심재우 뉴욕 특파원 jw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