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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 | 지상중계(3)] 당신은 오만한 리더입니까

중앙일보

입력

권력자와 권력이 없는 자의 심리적 체계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리고 권력자 또한 경험하는 변화의 방향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일 수 있다. 접근성향과 억제성향의 황금조합은 공감형 리더를 만든다.

조지선 심리학자는 오만한 권력자의 구체적인 행동 특성을 분석해 청중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조지선 심리학자는 오만한 권력자의 구체적인 행동 특성을 분석해 청중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권력을 얻으면 사람이 달라질까?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역사학자 로드 액턴의 말은 사실일까? 권력자와 권력이 없는 자의 심리적 체계는 확연히 구분된다. 액턴의 멋진 통찰은 절반만 맞는 말인데, 그 이유는 권력자가 경험하는 변화의 방향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심리적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파악해야 할 개념이 심리학자 제프리 그레이가 제안한 접근성향, 억제성향이다. 공식적으로는 행동접근시스템(BAS: behavioral approach system)과 행동억제시스템(BIS :behavioral inhibition system)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줄여서 BIS·BAS라고 부른다. 내향성·외향성이 성격 측면의 개인적 특성이라면, 접근·억제성향은 행동 특성이다. 핵심 질문은 이거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은 접근성향에 기름을 붓는다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부모들이 이런 말로 협박한다. “너 그렇게 공부 안 하면 거지 된다.” 억제성향을 자극하는 말이다. 어떤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듣고도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위협이나 처벌을 피하고자 동기화된 아이가 아닌 것이다. 이럴 땐, 보상에 민감한 접근성향을 자극해야 한다. “공부할 때 네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아니? 마음도 뿌듯하지? 나중에 CEO가 될 수도 있어.”

세상은 접근성향의 인재를 원한다. 어느 대기업의 고위 임원이 신입사원 채용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회사는 억제성향이 강한 친구들 싸~악 걸러낼 겁니다. 접근성향이 활발한 친구들만 뽑으려고요.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직원들 데리고 무슨 일을 합니까?.” 이 의견엔 타당한 측면이 있다.

접근성향은 강점이 많다. 우선 긍정적이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와 목표에 집중하는 목표 지향성이 조직 생활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보상을 찾기 위해 환경을 탐색하고, 세부적인 사항에 매몰되지 않으며 큰 그림을 볼 줄 안다. 이 조합은 창의성 발휘에 특히 유리하다. 일이 안 되는 이유를 자잘하게 세고 있는 사람보다 백번 낫다.

이제부터 권력 이야기로 들어간다. 권력은 접근성향에 기름을 붓는다. 없던 접근성향도 생긴다. “과연 이게 되겠어?”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의기소침한 그가 한자리 떡 차지하고는 달라졌다. 제법 리더다운 카리스마를 뿜으며 “할 수 있다!”를 외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권력은 접근성향을 활성화해 리더가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만의 시작은 ‘탈억제’와 ‘자기중심성’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권력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지만 고삐 풀린 접근성향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시작된다. 과도해진 접근성향은 탈억제(disinhibition) 현상을 유발하는데 이것이 권력의 첫 번째 심리적 부작용이다. 즉, 억제해야 할 때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탈억제는 과잉확신, 지나친 낙관, 규범무시의 증상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오만이다.

어느 대기업 임원의 바람처럼 접근성향의 화신들로 회사를 채우면 어떨까?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위험천만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일 잘하는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가 접근성향과 억제성향을 상황에 맞게 착착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직의 모든 일은 접근성향과 억제성향의 균형을 요구한다.

CEO의 일도 마찬가지다. 접근성향은 큰 꿈을 꾸고 목표를 설정하도록 도와주지만 일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억제성향이다. 일론 머스크가 우주탐사를 꿈꾸는 접근성향뿐만 아니라 전기차의 생산 공정을 효율화하고 품질을 챙기는 억제성향도 동시에 발휘할 때 테슬라의 미래가 더 밝을 것이다.

콜롬비아대학의 연구팀은 CEO의 오만이 회사에 손해를 입힌다는 것을 밝혀냈다. 최고경영자의 과잉확신, 즉 오만은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더 큰 비용을 지불하는 실책으로 이어졌다. 쓸데없이 비싸게 기업을 사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회사의 경영성과가 좋을수록, 언론의 찬사를 받을수록, CEO가 받는 보수가 2인자에 비해 과도하게 많을수록 M&A의 성과가 저조했다. CEO의 오만이 미치는 악영향은 이사회의 견제 장치가 약할 때 더 심화됐다.

이 과잉확신 현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스탠퍼드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주사위를 던졌을 때 나올 숫자를 맞히면 선물을 준다고 했다. 그러고는 두 가지 옵션 중에서 선택하게 했는데 실험자 혹은 참가자가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었다.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58%가 직접 던지는 옵션을 선택한 반면 권력자들은 100%가 “내가 직접 던지겠어!”라고 했다. 누가 던지든 특정 숫자가 나올 확률은 바뀌지 않는다. 권력자는 자신이 던지면 원하는 숫자가 나올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탈억제는 과잉확신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고 법과 규칙을 위반하는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는 비싼 차를 모는 사람이 값싼 차를 모는 사람보다 교통법규를 더 많이 위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회사에서 일할 때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고 대화 중 아무 때나 끼어드는 무례한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조직 위계에서 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위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문명인답지 못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세 배 정도 높다. 최근 ‘땅콩 회항’이나 ‘물컵 사태’는 당연히 탈억제 현상과 관련이 있다.

탈억제에 이어 권력의 두 번째 심리적 부작용은 자기중심성이다. 원인은 공감능력의 저하인데 이는 뇌에서 관찰된다. 예를 들어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드는 동작을 할 때,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는데 이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뇌에서도 동일한 영역이 활성화된다. 전두엽에 있는 이 영역을 ‘미러링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남이 하트를 만드는 것을 보기만 해도, 내가 직접 그 행동을 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불을 켜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정서적 연결 통로가 형성되는 것으로 이것이 공감의 기초다. 뇌과학자 수크빈더 오비가 알아낸 안타까운 사실은 권력자의 미러링 시스템(mirroring system)엔 환하게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클리대학의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는 권력자의 뇌가 안와전두엽 뇌손상 환자의 뇌와 잘 구분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두엽의 일부인 공감 네트워크가 사고로 인해 손상된 환자는 사고 전엔 따뜻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지만, 공감능력을 상실한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처럼 변하는데 권력자가 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남의 감정에 무감각한 몰이해와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충동성이 그 특징이다.

리더의 행동 처방은 ‘미루기’와 ‘쳐다보기’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가 제시한 위대한 기업을 위한 레시피는 리더의 겸손함과 의지다. 탈억제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더는 어떤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행동 처방은 ‘미루기’와 ‘쳐다보기’다.

가능하면 의사결정을 1시간 혹은 하루만 미루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 질문법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일을 진행하면 무엇을 얻을까? 반대로 일의 진행으로 잃는 것은 무엇인가? 이 일을 진행하지 않을 때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이 일을 진행하지 않을 때 잃는 것은 무엇일까?”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마지막 순서로 미뤄두는 것도 좋다. 모든 직원이 돌아가면서 각자의 의견을 먼저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또 권력자가 부하를 이해하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쉬운 일은 그를 쳐다보는 것이다. 핸드폰과 컴퓨터를 옆으로 치워두고 표정과 행동에 주의를 집중하면 미러링 시스템이 빛을 낼 것이다. 그러고는 가급적 말을 자르지 않고 그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이다. ‘미루기’와 ‘쳐다보기’를 통해 접근성향과 억제성향의 황금조합을 확보한 공감형 리더! 미래의 당신 모습이다.

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전문연구원(심리학 박사)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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