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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여성 디지털 네이티브의 분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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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호 35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남성 누드모델 몰카를 찍어 게시한 여성이 징역 10개월 실형을 받은 후, 20대를 중심으로 한 여성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간 압도적으로 많았던 남성의 여성 몰카 범죄는 대부분 집행유예로 끝났음을 지적하며 말이다.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외치며 혜화역·광화문 시위를 주도한 것도 이 세대 여성들이다.

어떤 이들은 묻는다. 예전보다 훨씬 덜 차별 받으며 자란 여성들이 왜 이렇게 분노에 차 있냐고. 그건 이들이 어려서부터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서, 디지털로 여과 없이 표출되는 여성혐오를 접하며 분노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대표적 디지털 성폭력인 몰카 촬영·유포는 여성 일반을 성적 노리개로 여기는 태도에서 나왔다. 뿐만 아니라,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한 복수로 몰카를 유포한 다수 사례, “잘난 척하는 여자들의 원초적인 모습을 비웃기 위해” 화장실 몰카를 본다는 어느 남학생의 고백 등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을 효과적으로 모욕하고 깔아뭉개기 위한 악의가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그간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처벌도 솜방망이였다.

또한 디지털 여혐 언어폭력은 ‘여혐의 원흉’으로 불리는 극우 커뮤니티 일베보다 오래됐으며 결코 일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보의 성지’라던 포털 다음 ‘아고라’에 한국 여자 전반을 “된장녀,” “김치녀”라고 비하하는 글이 한때 매일 올라왔다.

포털 네이버의 뉴스 댓글판 또한 여혐의 난장이었다. 남성의 범죄 뉴스에는 그 개인에 대한 비난 댓글만 달리는 반면, 여성의 범죄에는 “역시 여자가 문제,” “역시 김치녀,” “역시 김여사”라는 일반화 여혐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강력범죄자의 80% 이상이 남성이고 교통범죄자조차 남성이 여성의 5배 이상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여성이 피해자일 때도 여혐 댓글이 쏟아졌다. 2012년 오원춘에 의해 처참히 살해된 무고한 여성의 경우, 유족이 악플을 멈추어 달라고 공개 호소할 정도였다.

본래 하위문화였던 노골적 혐오발언은 디지털 시대에는 그대로 실생활로 다시 퍼졌고 디지털 네이티브 여성들은 그 여파로 교실 등에서 늘 여혐발언을 접해왔다. 제지 없이 폭주하던 디지털 여혐에 처음 분노의 미러링이 폭발한 게 2015년 메갈리아였고, 그제서야 여혐이 남혐과 더불어 진지하게 거론되고 제지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디지털 네이티브 여성들은 ‘미러링이 먹힌다’고 생각할 수밖에.

물론 메갈리아 때보다도 한층 폭력적인 워마드의 몰카 미러링 등을 용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워마드를 일베와 같이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워마드는 일베의 미러링이 아니라, 뿌리 깊고 폭넓은 모든 디지털 여성혐오의 종합세트 미러링이다. 디지털 성폭력을 더 엄하게 처벌하고, 서구에서처럼 적어도 학교에서만이라도 차별적 혐오발언을 규율로 제재를 하는 등의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즉, 미러링의 원본부터 없애지 않는다면, 워마드를 없앤들 다른 워마드가 또다시 탄생할 것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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