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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인 듯 … 대관령 배추밭엔 별들이 우수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와,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것 같다” “세상에, 은하수를 직접 볼 수 있다니.”

하늘 아래 첫 동네 ‘안반데기’ #50년 전 화전민이 일군 고랭지밭 #195㏊ 규모로 배추·감자 등 재배 #마을서 가장 높은 멍에전망대엔 #4~8월 은하수 절정, 관광객 북적

한여름 밤 어둠이 깔리면 은하수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 있다.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 능선에 있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 마을이다.

안반데기 마을의 은하수는 4~8월 사이 절정을 이룬다. 이 무렵이면 은하수 관찰을 위해 설치한 이 마을 멍에전망대는 관광객과 사진동호인으로 북적인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 휴가철에 인기다. 멍에전망대는 배추밭을 따라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강릉시 멍에전망대에서는 4~8월 사이 맑은 날엔 언제든 은하수를 감상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달 하순 멍에전망대에서 야간 촬영한 은하수 모습. [박진호 기자]

강릉시 멍에전망대에서는 4~8월 사이 맑은 날엔 언제든 은하수를 감상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달 하순 멍에전망대에서 야간 촬영한 은하수 모습. [박진호 기자]

해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촬영 오는 전모(64·여)씨는 “은하수는 시기별 정확한 관측 시간이 있다. 8월은 해가 지는 8시 이후 남동쪽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보름달이 뜨는 시기는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안반데기는 해발 1100m의 고산지대에 있다. 이곳은 은하수만큼이나 일출명소로도 유명하다. 요즘 같은 시기엔 끝없이 펼쳐진 고랭지 배추밭과 아침 안개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감상할 수 있다.

안반데기는 떡메로 반죽을 내리칠 때 쓰는 오목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판 ‘안반’과 평평한 땅을 뜻하는 우리 말인 ‘덕’에 강릉사투리가 더해져 만들어진 지명이다.

행정지명은 대기리로 조선 후기 인문지리지인 ‘여지도서’에도 ‘대기’라고 기록돼있다. 큰 터가 자리하고 있어 ‘큰 터’ ‘대기’라 불러왔다고 한다. 대기리는 처음엔 3개리였다. 하지만 1967년 화전민이 들어와 안반데기 농지를 개간했고, 감자와 배추 등 채소를 심으면서 4개리로 확장됐다.

해발 11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안반데기 마을에 선 동해안 일출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왕산면 ]

해발 11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안반데기 마을에 선 동해안 일출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왕산면 ]

안반데기는 화전민이 소와 함께 밭을 일구던 개척정신과 애환이 깃든 곳이다. 배추밭은 급경사지라 기계로 농사짓기가 어렵다. 화전민들은 소와 곡괭이로 밭을 일궈왔다. 현재 마을엔 20여 가구에 4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들이 가꾸는 배추밭과 양배추밭, 감자밭은 195㏊에 이른다.

대기4리 이정수(60) 이장은 “8월 중순부터 추석 전까지 짧은 기간 전국에 공급되는 배추의 70%가 안반데기 고랭지 배추”라고 했다.

안반데기 마을엔 숙박시설이 1곳(10여 명 수용 가능)뿐이어서 성수기엔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숙박시설은 멍에전망대와 1㎞ 거리에 있다. 서울에서 온 백승우(34)씨는 “수많은 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니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살았던 여유를 되찾은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마을 주변에는 볼거리도 다양하다. 인근 노추산에는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모정(母情)탑’이 있다.

모정탑은 대기리에서 노추산 계곡을 따라 900m가량 들어가면 나온다. 이곳에 가면 고(故) 차옥순씨가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며 1986년부터 26년간 쌓은 3000개의 돌탑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수능과 취업 시즌이면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모정탑길은 2018평창겨울올림픽 개최도시 평창·강릉·정선을 잇는 9개 산책 코스 ‘올림픽 아리바우길’에 포함되기도 했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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