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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과 국가주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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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정치권에서 ‘국가주의 논쟁’이 뜨겁다. 국가주의는 정도에 따라 여러 형태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국가가 경제와 사회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한국은 과거 국가주의 성향의 정부에 의해 고속 성장을 경험했다. 최빈국이던 나라가 세계에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 주도의 효과적인 정책, 유능한 관료 그룹, 그리고 정책에 반응해 성공적으로 민간 부문을 키워 온 기업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국가주의적 성장 위주의 정책 기조가 지속하는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성과 양극화, 소외계층의 확대, 정경유착 등 구조적 문제들이 야기된 것 또한 사실이다.

양극화·소외계층 확대 명분 내건 #현 정부에서 국가주의 성향 커져 #규제 양산해 경제에 부정적 영향 #약자 어려움 더하는 정책 바꿔야

문재인 정부는 한국의 발전 과정에서 초래된 구조적 이슈들을 문제 삼고 정책 방향의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운영의 틀 차원에서 보면 현 정부의 국가주의적 성향은 과거 정부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부동산 규제 등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주요 정책 수단이고 공공 일자리 창출 등 정부의 영역 확장을 공언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선진국과의 경쟁에 직면해 있음과 동시에 주어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국가주의적 정부의 효용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한국 경제의 발전단계에 적합한 정부의 역할과 위상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혁신과 경쟁촉진이 경제에서 절실해진 현 시점에서 볼 때 규제를 양산하는 국가주의는 경제발전에 부정적인 면이 크다. 국가주의적 정부는 시장 자율성을 제한하는 규제들을 생성해 정부에 거대한 권력을 집중시킨다. 권력 집중은 국가권력에 따라 자원 배분이 좌우될 가능성을 높인다. 지난 시절 축적된 촘촘한 규제들은 기업들에 시장경쟁이 아닌 정경유착을 추구하는 유인을 제공해 왔다.

시론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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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규제 당사자인 동시에 정책적 지원 기능을 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 간의 유착관계가 발생하는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아가 규제는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 기능을 약화하며 창의와 혁신을 저해하는 일차적인 요인이 된다. 적폐 생성을 구조적으로 방지하고 시장에 혁신의 기회를 넓히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구조적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규제와 통제를 푸는 순간 무질서에 빠질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정부가 제도를 통해 시장을 선도해 부가가치 창출에 앞장설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섣부른 국가주의적 개입과 규제는 시장질서를 해치고 자원배분을 왜곡한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 한국 경제의 발전단계에서는 정부가 민간보다 정보가 늦을 수밖에 없고, 시장의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자를 위해 시장을 교정하겠다는 의도로 시장에 직접 개입한다면 오히려 역효과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규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 등이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경제 주체의 유인, 행동, 시장 기제의 작동원리를 잘못 이해한 데 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치에 영향을 받아 합리성이 결여되는 경우 시장 교란과 부작용은 더 심하다. 선진국의 최저임금은 대부분 중위임금의 50% 이하에서 맴돈다. 합리적 기준 없이 결정된 한국의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62%에 이르게 됐고 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반대로 정부의 역할이 강화돼야 할 부문도 있다. 향후 기술발전, 글로벌화의 진전, 고령사회의 현실화 등으로 인한 충격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일자리 불안과 소득분배 악화 등 시장이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정부는 노동개혁, 빈곤층 대책, 사회안전망 강화, 재기 지원 등에 대한 정책에 집중해 대응해야 한다.

현 정부의 정책들이 오히려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전환이 시급하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가 경쟁과 시장경제 질서를 지키는 역할은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을 제어하고 기술 탈취 등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혁신과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6년 중소기업 기술 탈취 사례는 644건이고, 건당 피해액수는 17억원이라고 한다.

선진사회로 향하는 한국 정부의 새로운 역할은 국가주의적인 인위적 개입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혁신적 기업이 출현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고 치열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시장질서를 정착시키는 시스템 구축에 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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