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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장관들의 무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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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2003년 3월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윤덕홍 교육부 장관의 취임식 분위기는 묘했다. ‘교육 대통령’을 자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같이하겠다”며 임명한 첫 교육 수장이었던 만큼 출입기자로서 그의 취임 일성이 궁금했다. 그런데 “장관을 뺑뺑이 돌리고 핫바지로 만드는 곳이 교육부라고 하더라”는 말부터 나왔다. 대학 총장을 지낸 노학자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한 말이었지만 따라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의가 ‘군기 잡기’인지 ‘사정’인지 모호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윤 장관은 험로를 걸었다.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NEIS) 도입을 놓고 전교조에 휘둘린 게 대표적이다. 결국 ‘말 바꾸기 장관’이란 오명을 쓴 채 9개월 만에 하차했다. 끝이 개운치 않기로는 후임 장관들이라고 별반 다를 게 없다. 안병영 장관은 청와대가 밀어붙이는 수능 등급제에 어깃장을 놓는 바람에 수능 휴대전화 부정 사건을 빌미로 1년 만에 경질됐다. 김진표 장관은 청와대 코드에 맞춰 사학법 개정과 외고 폐지에 총대를 멨지만 반발이 거세지자 물러났다.

역대 교육부 장관들은 대부분 ‘학년제 장관’이다. 초대 장관부터 박근혜 정부 마지막 장관까지 재임 기간이 1년 남짓(평균 14.7개월)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교육부를 ‘장관들의 무덤’이라고 했을까. 백년대계를 다루는 교육부 수장의 목숨이 파리만도 못하다는 자조가 나오는 까닭이다.

교육부 장관의 운명이 이런 데는 이유가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가 최근 발표한 ‘교육부 장관 리더십 탐색 연구’에 그 일단이 보인다. 그가 보는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의 아바타’다. “직을 유지하고자 하는 아바타는 자율조정시스템을 중지시키고 조정에 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폐기 경고가 들어오고 그러다가 순간 스위치가 꺼진다.” 교육정책은 본질적으로 시간을 요한다. 하지만 여론과 성과를 의식하는 대통령과 청와대는 마음이 급하다. 장관이 엇박자를 내거나 추진력을 보이지 않으면 기다리기보다는 교체하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오늘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발표하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도 사면초가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찬반 양측의 거센 사퇴 요구에 직면할 처지다. 지난해 7월 취임했으니 영락없는 ‘학년제 장관’이 또 나올 판이다. 대통령은 아바타를 제물로 활용하고 위기를 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교육은 표류한다. 교육부가 ‘장관의 무덤’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십년소계’마저 기대난망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