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왕골 장인 "요즘엔 파스텔톤 왕골공예품도 만들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7)

왕골을 엮어 만든 기물. [사진 이정은]

왕골을 엮어 만든 기물. [사진 이정은]

옛날 사람들은 전통 방식의 지혜로 자연 소재로 옷을 지어 입고,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지어 의식주(衣食住)를 자급자족했다. 그중에서 ‘주(住)’는 집안 생활 공간에 있는 가구와 생활용품과 장식품 등 소품도 해당한다.

인천광역시에 있는 강화군은 농업이 주산업을 이루며 화문석과 왕골의 가내수공업이 유명하다. 화문석은 왕골을 손으로 덧겹쳐가며 엮은 돗자리다. 고려 시대에 왕실에서 주로 사용하던 화문석은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주요 수출품이 됐다. 조선 시대에도 매우 귀한 제품으로 외국과 교역품으로 사용됐다.

고려도경에서 ”정교한 것은 침상과 평상에 깔고 거친 것은 땅에 까는데, 침상에 까는 자리는 매우 부드러워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아 이는 매우 우수하여 놀랍기만 하다.”라고 적혀 있을 만큼 화문석은 우리 전통 공예의 명품임은 분명하다.

화문석의 핵심 재료인 왕골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년생 풀로서 키는 60~200cm에 이르며 완초라고도 한다. 무형문화재 완초장이란 그 왕골로 기물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왕골 제품으로는 자리뿐만 아니라 마루에서 사용하는 방석과 마른 음식을 담는 합이 있다.

유선옥(위) 장인과 국가 무형문화재 이상재(아래) 장인이 왕골을 엮는 중이다. [사진 이정은]

유선옥(위) 장인과 국가 무형문화재 이상재(아래) 장인이 왕골을 엮는 중이다. [사진 이정은]

이 왕골이 평생의 삶인 부부가 있다. 국가 무형문화재 완초장을 보유한 이상재 장인(76)은 14살부터 62년 동안 완초를 엮어온 장인이다. 그 국가 무형문화재 전수교육조교 유선옥 장인(66) 역시 초등학교 졸업 직후부터 이상재 장인을 스승으로 만나 남편으로 맞이해 52년 동안 완초를 엮었다. 2005년부터는 이상재 장인과 함께 강화화문석문화관에서 왕골 공예를 가르쳤다.

강화 교동에서는 왕골 다루는게 일종의 놀이

왕골로 기물을 만드는 것은 강화도에서는 예로부터 일종의 취미이자 놀이였다. 특히 강화 교동 사람들은 왕골 제품을 부업으로 삼아 생활해왔으며 교동 출신인 이 장인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왕골 기능을 익히게 됐다. 이 장인은 유 장인에게 기법을 전수하면서 왕골을 손으로 엮어 만드는 소품을 함께 제작했다.

이상재, 유선옥 두 장인은 동시에 말한다. “30년 전만 해도 전국 곳곳 시장에서 판매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왕골 제품을 사 갔어요. 저희가 상회에 나가서 판 게 아니라, 옛날부터 저희 제품은 특별하기 때문에 직접 찾아오셨어요. 하지만 플라스틱 용기나 더 편리한 그릇이 생기면서 점점 잘 팔리지 않게 됐죠. 요샌 그 수요가 적어 거의 일을 놓을 만큼 많이 만들진 못해요.”

이 장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완초를 시작했다. “완초를 하게 된 것은 할아버지 대에서부터였습니다. 완초 공예의 원산지인 교동에선 겨울엔 추우니까 밖에서 일을 못 해 부업으로 만들고 팔려고 하던 일종의 소소한 업이었죠. 예전에 저희 마을에선 집집이 모두 왕골공예를 했어요.

그 와중에 제가 손재주가 있던 모양이에요. 운 좋게 문화재로서 가르치고 전수하고 있는데, 이젠 배우는 학생이 턱없이 줄었죠. 그래도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어서 적성에만 맞으면 45세쯤부터 꾸준히 배우시는 분도 몇분 계시고 은퇴 후에 배우러 오시는 분도 계세요. 30여년 이상 꾸준히 배운 제자 중 실력가도 많이 있죠.”

이 장인은 이어서 “1980년대까진 상회에서 잘 팔렸고, 오늘날까지도 일반 왕골 제품은 시장에 많아요. 중국에서 수입해온 왕골 제품은 싸지만, 우리 제품은 정교한 만큼 비싸서 많이 팔리지는 않아 속상하죠. 무엇보다 왕골 공예는 완초를 재배해서 하는 건데 이제는 재배를 많이 안 해서 가격이 더 비싸졌어요”라고 덧붙였다.

원색인 오색에서 파스텔톤까지 염색이 가능해진 왕골. [사진 이정은]

원색인 오색에서 파스텔톤까지 염색이 가능해진 왕골. [사진 이정은]

유 장인도 설명한다. “옛날에는 염색이 원색인 오색 다섯 가지만 했죠. 지금은 중간색인 섞인 색이 나와서 파스텔 톤까지 가능해요. 예전엔 그릇 용도로만 많이 썼는데, 삼합으로 원형만 하다가 모자나 가방 혹은 사각모형이나 팔각모형으로 응용해 제작하게 됐어요. 왕골 소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왕골, 물, 칼이 필요하고, 하나하나 손으로 엮는 거라 어려워요. 중간 사이즈 합을 하나 짜는데 보름 넘게 걸리고 합이 큰 것은 부지런히 짜도 한 달이 걸립니다.”

 선조 지혜 담긴 왕골,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냉기 방지

여름철 폭염에 특히 빛을 발하는 왕골자리는 선조의 지혜에서 나온 생활 공예품이다. 왕골 자체가 여름철에는 시원하면서 수분을 잘 흡수하고 겨울에 냉기를 방지해 주기 때문이다. 왕골은 우리나라 특유의 공예작물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를 좀 더 보존하고 진화시켜야 한다.

좋은 공예품이 작품에서 제품화해 훌륭하게 탄생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품질뿐 아니라 디자인, 생산량, 가격, 포장, 브랜딩, 유통망 등 여러 요소가 중요하다. 누구보다 만드는 장인이 이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풀기 어려운 가장 큰 문제는 오늘날 줄어든 수요다. 많은 사람이 편리한 것만 찾는 시대는 느림과 자연의 감성을 잃은 경향이 있다.

진정한 전통이란 과거의 것이 현시대에서도 이어지는 것이다.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자연 친환경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항상 그곳엔 전통의 지혜가 있다. 전통 수공예품은 자급자족하던 시대에 모두 자연의 재료로 완성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과거처럼 우리 집안 곳곳에서 생활에 요긴하게 쓰인 완초 공예품을 잊지 않고 다시 사용하길 희망한다.

이정은 채율 대표 je@cheyul.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