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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의 의심에 무너진 공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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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쌍둥이를 관찰하듯 보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되기 직전 몇 개월간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다. 친한 대학 선배의 사촌동생인 중3 남학생 두 명을 ‘제자’로 맞았는데 쌍둥이였다.

‘IMF 대졸 백수’의 불안감을 잠시 덜어주는 기회였기에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야지 맘먹었다. 그런데 우등생인 둘은 문제를 풀 땐 서로를 라이벌로 여겼다. 방향만 잘 잡아주면 조금이라도 먼저 문제를 풀어내려 했다. 승부에서 이기면 설명 겸 자랑을 하니 서로가 서로의 선생님이었다. 내겐 ‘땅 짚고 헤엄치기’ 과외였던 셈이다. 게다가 쌍둥이의 엄마는 아이들의 성적보다는 건강을, 강의 수준보다 내 끼니를 더 챙겼다.

기자가 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때의 고마웠던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선배와의 연락도 뜸해져 띄엄띄엄 안부를 들었다. 쌍둥이는 명문대에 진학했고 의사·과학자가 됐다고 한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서울 강남 숙명여고 쌍둥이의 ‘문·이과 동시 전교 1등 사건’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중위권이던 고교 2학년 쌍둥이 자매가 서울 강남의 8학군에서 갑자기 1등으로 뛰어오르는 ‘신화’가 가능하냐는 게 쟁점인 사건이다.

‘1등 쌍둥이’를 겪어 본 나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매의 아버지가 학교 교무부장이라는 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0년 전 쌍둥이의 부모가 비겁하게 성적을 올리려 했겠는가. 중학생 아이를 둔 내게도 자칫 아이의 인성을 망칠 수 있는 부정행위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 아니던가. 다만 이 사건을 너무 순진하게 바라보는 1인일 수도 있겠다는 걱정은 스쳐 갔다.

사교육의 메카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제기된 의혹은 그러나 정교하다. 20년 전 과외 선생의 낭만과 짧은 생각으로 예단할 수준이 아니다. 사교육과 내신의 촘촘한 매트릭스는 “아이들이 원래 공부를 잘했고 직전 학기 성적은 1등이 가시권이었다”는 학교 측 설명마저도 무색하게 했다. 현장의 의혹은 그곳에 도사리는 부정의 개연성을 감안한 듯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어쨌든 대치동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시스템의 균열은 제대로 설명돼야 한다.

가공할 정교함을 갖춘 사교육 시장 앞에 공교육은 나름의 논리와 존재감을 보여줄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최근 특수활동비 폐지 요구에 직면한 국회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특수활동비가 법안을 만드는 18개 상임위원회를 운영하는 데 윤활유 역할도 했다’는 해명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한다. 대치동 의혹에 속수무책인 학교처럼 신뢰를 잃은 공적 영역은 그렇게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