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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은 북한 하기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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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남북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밝힌 데 공감한다.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남북으로 나뉘어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오늘날까지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대치해 온 현실은 더없는 역사적 비극이자 민족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고도화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문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또한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일 것이다.

9월 회담에서 비핵화 선행조치 촉구해야 #핵 감추려 한다면 말의 성찬으로 끝날 것

하지만 그런 부푼 희망 속에서 일말의 공허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오늘날의 현실이 우리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닌 까닭이다. 남한의 화해와 경제협력 노력을 번번이 깨고 뒤집은 것은 북한이었다. 1차 북핵 위기 이후의 경수로 및 식량 지원,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건설 등 남한의 지원과 경협 노력이 이어졌지만 북한은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해오다 발각돼 2002년 2차 북핵 위기를 초래했다. 이후 북한이 비핵화를 합의하고 2008년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까지 연출했지만 결국 2017년 핵·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핵보유국 선언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휴전선 인근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제안에 일각에서 “또 퍼주기냐”는 비판과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러한 학습효과 탓이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정착되면”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북한의 비핵화 움직임이 더디기만 한 현실에서 그런 목소리들을 성급하다고만 치부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9월 평양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확실한 비핵화 조치를 단단히 촉구해야 한다. 아무리 건설적인 제안을 한들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유엔 제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모든 경협 노력이 공염불이 되고 만다는 것을 확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길 바란다”고 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가 선행돼야만 미국의 제재 해제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문 대통령이 제안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라는 담대한 구상도 가능해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예시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유럽연합(EU)으로 확대·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독일이 팬저 탱크를 몰래 만들고 있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뒷주머니에 핵을 숨겨두려 한다면 문 대통령의 제안은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임을 잘 알아야 한다. 그 제안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말처럼 베트남의 기적을 북한 것으로 만드는 축복이 될지, 아니면 그저 말의 성찬으로 끝날지는 모두 북한 하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