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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마지막 패전일' 일왕은 "깊은 반성",아베 총리는 …

중앙일보

입력

‘헤이세이(平成ㆍ일본의 현재 연호) 시대의 마지막 추도식’
일본인들이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르는 15일을 맞아 일본 언론들은 내년 4월 말 퇴위하는 아키히토(明仁)일왕(일본에선 천황)이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아키히토 일왕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전몰자 추도식이 도쿄의 부도칸에서 열렸다. 추도사를 읽기위해 등단하는 아베 총리.[로이터=연합뉴스]

아키히토 일왕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전몰자 추도식이 도쿄의 부도칸에서 열렸다. 추도사를 읽기위해 등단하는 아베 총리.[로이터=연합뉴스]

전쟁의 책임을 외면하는 일본 정치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아키히토 일왕은 그동안 추도사를 통해 반성의 뜻을 밝혀왔다.

내년 4월 퇴위 예정 아키히토 일왕 "평화"표현 추가 #총리 추도사는 "아시아 주민들에 고통" 6년째 빠져 #우익 성지 야스쿠니선 "전쟁이 아시아인들 구했다" #의원 50명 단체로 참배,고이즈미 신지로 따로 참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일본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일왕은 “전후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세월을 생각하며,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은 패전 70주년이던 2015년 추도사 때부터 일왕이 추도사에 새로 넣은 것이다. ‘전후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세월을 생각한다’는 부분은 올해 새롭게 추가됐다.

지지(時事)통신은 “평화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쟁의 책임이나 반성의 표현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의 추도사는 예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1993년 이후 역대 총리들이 사용해왔던 “아시아 제국의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긴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는 표현은 2차 아베 내각 발족 후인 2013년부터 6년째 빠졌다.

전후 역대 총리들이 했던 ‘부전(不戰ㆍ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의 맹세’란 단어도 역시 6년째 없었다.

다만 ‘맹세’라는 표현을 아예 쓰지 않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 역사를 겸허히 마주 보고,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그 결연한 ‘맹세’를 관철해 나가겠다”며 간접적으로 비슷한 표현을 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군복을 입은 이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야스쿠니 신사에서 군복을 입은 이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우익의 성지’ 야스쿠니(靖國)신사는 아침 일찍부터 북적였다.
오전 10시쯤부터 본전 앞에서 참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500명을 넘었다.
군복을 입고 욱일기를 흔드는 우익들의 모습은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많은 참배객들.윤설영 특파원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많은 참배객들.윤설영 특파원

대표적인 우익 단체인 ‘일본 회의’를 비롯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를 지키는 모임’ 등은 곳곳에서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뿌렸다. "아이들의 머리가 굳기 전에 아름답고 훌륭한 일본의 역사를 가르치자"는 주장이 난무했고,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서명운동도 벌어졌다.

야스쿠니 신사 주변에서 헌법개정 서명운동등을 벌이고 있는 우익단체 회원들.윤설영 특파원

야스쿠니 신사 주변에서 헌법개정 서명운동등을 벌이고 있는 우익단체 회원들.윤설영 특파원

중앙일보 취재팀과 마주친 참배객들은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인의 의무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유럽 식민지가 될 위기의 아시아 국가를 구하기 위한 정당한 행동","위안부는 돈이 필요했던 매춘부들","선조들이 살아있을 때 지은 죄값은 재판을 통해 모두 치렀다. 죽은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지는 건 좋지 않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가득메운 참배객들. 윤설영 특파원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가득메운 참배객들. 윤설영 특파원

낮 12시가 되자 인근 부도칸에서 열린 정부 추도식의 아베 총리 추도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이어 약 3분 동안의 묵념이 끝난 뒤 일부는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

아베 총리는 직접 참배를 하지 않는 대신 시바야마 마사히코(柴山昌彦)자민당 총재 특보를 보내 공물료를 지불했다.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 명의로 ‘다마구시’(玉串ㆍ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 공물료를 사비로 냈다.

2013년 말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해 파문을 일으켰던 아베 총리는 종전기념일엔 6년째 이런 방식으로 간접 참배만 해왔다.
시바야마 특보는 “참배를 직접 하지 못해 면목이 없다”는 아베 총리의 말을 기자들에게 전했다.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50명이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AFP=연합뉴스]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50명이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AFP=연합뉴스]

내각 각료급의 참배는 없었지만,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외무성 부대신과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총리 보좌관 등 정부 인사들도 참배했다.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 50명이 단체로 참배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차남으로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수석부간사장도 따로 야스쿠니를 찾았다.

도쿄=서승욱ㆍ윤설영 특파원 sswook@joongam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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