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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포획 몰리자 멧돼지 현상금 2배로 올린 지자체

중앙일보

입력

멧돼지. [중앙포토]

멧돼지. [중앙포토]

“순진한 고라니 보다 사나운 멧돼지를 잡는 게 훨씬 어렵죠.”
충북 옥천에서 유해야생생물 퇴치 활동을 하는 엽사 경력 30년의 이중석(57)씨는 아직도 멧돼지 포획이 어렵다. 고라니는 낮에도 쉽게 잡히지만 야행성인 멧돼지는 숲 속에 숨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이씨는 “고라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눈만 껌뻑껌뻑 거리다 총탄 한 발에도 잡힌다. 눈치가 빠른 멧돼지는 사냥개와 엽사 둘이 매달려야 겨우 포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 멧돼지 포획 포상금 5만원→10만원 인상 #가성비 높은 고라니 포획 집중…영동·보은도 수당 올려

이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민 신고를 받고 멧돼지 포획에 나서지만 허탕을 치기 일쑤다. 나무가 무성한 숲과 가파른 경사를 다니다 보니 위험부담도 크다고 한다. 이씨는 “총상을 입거나 새끼를 달고있는 멧돼지가 가장 위험하다. 초보 엽사들이 고라니 포획에 집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멧돼지 포획을 기피하는 엽사들을 달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포획 포상금을 인상하고 있다. 포상금에 큰 차이가 없다보니 잡기 어려운 멧돼지보다 고라니를 선호하는 엽사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 옥천군 유해야생동물 구제단이 야간 장비를 활용해 멧돼지를 수색하고 있다. [사진 옥천군]

충북 옥천군 유해야생동물 구제단이 야간 장비를 활용해 멧돼지를 수색하고 있다. [사진 옥천군]

15일 옥천군에 따르면 이달부터 오는 10월까지 기존 5만원이던 멧돼지 포획 포상금을 10만원으로 2배 인상했다. 고라니의 경우 3만원으로 종전과 같다. 청솔모나 까치 등은 한 마리당 5000원이 지급된다. 박병욱 옥천군 환경관리팀장은 “멧돼지를 잡는 엽사들이 주로 야간에 활동하고 사냥개와 야간투시 장비까지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고라니에 비해 위험 부담이 큰 만큼 포획 수당을 높이자는 의견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충북에서는 멧돼지 4117마리가 잡혔다. 고라니 포획 건수는 약 8배인 3만2189마리다. 올해 상반기 역시 멧돼지는 1234마리가 포획된 반면 고라니는 10배가 넘는 1만2592마리가 잡혔다.

엽사 지광식(47)씨는 “야생에 고라니 개체수가 멧돼지 보다 많은 탓도 있지만 포획 수당 차이가 크지 않다 보니 초보 엽사를 중심으로 고라니 포획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며 “멧돼지 한 마리를 잡느니 고라니 20마리를 잡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예전엔 자원봉사 개념으로 유해조수 퇴치에 앞장 섰지만 지금은 멧돼지와 고라니 개체 수가 워낙 많아 손해보면서 활동하는 엽사가 드물다”며 “포획 수당 인상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지자체가 전문 엽사를 보유한 야생생물관리협회 등에 위탁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충북 옥천군 유해야생동물 구제단이 멧돼지를 포획하고 있다. [사진 옥천군]

충북 옥천군 유해야생동물 구제단이 멧돼지를 포획하고 있다. [사진 옥천군]

상황이 이러다 보니 옥천군에서는 지난 3월 한 달간 무려 2379마리의 고라니가 잡혀 포획 수당 한 해 예산(1억원) 대부분을 소진했다.
옥천군 외에도 충북 보은·영동군은 최근 멧돼지 포획을 독려하기 위해 수당을 인상했다. 보은군의 경우 이달부터 12명으로 구성된 멧돼지 전담반을 꾸리고 포획수당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렸다. 영동군은 지난달 25일부터 멧돼지 수당을 10만원으로 2배 올린 대신 고라니 수당지급은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충북야생생물관리협회 관계자는 “멧돼지 한 가족이 옥수수 밭을 통째로 헤치우는 데 이틀이면 끝난다”며 “농작물 피해신고의 대부분이 고라니가 아닌 멧돼지로 인한 것인 만큼 멧돼지 포획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옥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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