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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궈진 도시를 식혀라…미 LA에는 흰색 도로가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생태학(Eco-logy)과 경제학(Eco-nomics)이 같은 어원(Eco)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에코(Eco)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온 단어로 ‘집’을 뜻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지키는 일이 인간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천권필의 에코노믹스]는 자연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자원봉사자가 서울의 한 건물 옥상을 쿨루프 페인트로 칠하고 있다. [사진 십년후연구소]

자원봉사자가 서울의 한 건물 옥상을 쿨루프 페인트로 칠하고 있다. [사진 십년후연구소]

10일 오후 2시, 35도가 넘는 폭염 속에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건물 위로 올라갔습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새하얀 옥상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온통 초록색인 주변 건물의 옥상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이른바 ‘쿨루프(Cool Roof)’ 빌딩입니다.

눈은 부시지만 그렇게 뜨겁지는 않아요. 여기 기존의 초록색 방수 페인트와 흰색 쿨루프로 칠한 표면을 만져보면 바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조윤석 십년후연구소장

서울 연남동의 쿨루프 빌딩. [사진 십년후연구소]

서울 연남동의 쿨루프 빌딩. [사진 십년후연구소]

조윤석 소장은 1년 전 이곳에서 옥상의 색을 바꾸는 ‘쿨루프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쿨루프 표면에 손바닥을 대자 몇 시간 동안 햇볕을 받아서인지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옆 녹색 표면에 손을 대는 순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뜨거운 열기에 깜짝 놀라 바로 손을 뗐습니다. 실제로 표면 온도를 측정해보니 각각 38도와 50도로 12도나 차이가 났습니다.

왼쪽부터 일반 방수재 페인트와 회색 및 흰색 쿨루프 페인트. 열화상 카메라로 보니 온도가 높은 녹색 표면이 붉은색으로, 온도가 낮은 흰색 표면이 푸른색으로 표시됐다. [사진 십년후연구소]

왼쪽부터 일반 방수재 페인트와 회색 및 흰색 쿨루프 페인트. 열화상 카메라로 보니 온도가 높은 녹색 표면이 붉은색으로, 온도가 낮은 흰색 표면이 푸른색으로 표시됐다. [사진 십년후연구소]

2014년 옥탑방부터 흰색으로 칠해 

쿨루프란 일반 지붕보다 더 많은 햇빛을 반사해 건물 내부로 열이 흡수되는 것을 막도록 설계된 지붕을 말합니다.

밝은색 옷을 입으면 햇빛을 반사해 더 시원하고, 어두운색 옷을 입으면 열을 흡수해 더운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조 소장은 2014년부터 서울 옥탑방의 지붕을 하얗게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쿨루프를 시공한 건물만 전국에 걸쳐 200채가 넘습니다. 올해에는 서울시와 함께 도봉구 창동의 도시재생구역 70가구의 옥상을 쿨루프로 바꾸고 있습니다.

옥상 바로 아래층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전에는 대형 에어컨 두 대를 풀가동해도 더웠는데, 옥상 색을 바뀐 뒤로는 한 대만 돌려도 시원하다고 하더라고요. - 조 소장

흰색이다 보니 쉽게 더러워지지는 않을까.

조 소장은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때가 타면 반사율이 80~90% 정도로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회색으로 변한 뒤에도 일정 수준의 쿨루프 효과는 유지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 여름철에 시원해질수록 겨울에는 더 추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 소장은 “이른바 ‘윈터 페널티(Winter Penalty, 겨울철 불이익)’가 있는 건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다만 “겨울철에는 일조시간이 여름철보다 절대적으로 짧고, 일사량 자체도 적기 때문에 실제 햇빛이 주는 영향은 여름의 3분의 1도 안 된다”며 “서울보다 높은 위도에 있는 미 뉴욕이 쿨루프를 권장하는 것도 여름철에 얻는 이익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건물뿐 아니라 도시 온도까지 낮춰 

찜통더위가 절정을 이룬 지난달 31일 서울 성수동의 한 공원에 설치된 온도계가 40도를 기록하고 있다. [뉴스1]

찜통더위가 절정을 이룬 지난달 31일 서울 성수동의 한 공원에 설치된 온도계가 40도를 기록하고 있다. [뉴스1]

쿨루프 프로젝트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건물뿐 아니라 도시 전체의 온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서울에는 ‘역대급’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로 극심한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프리카(서울+아프리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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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폭염 도시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열섬현상(Heat Island Effect)’ 때문입니다. 도시를 덮고 있는 건물의 콘크리트와 도로의 아스팔트가 낮에 데워졌다가 밤에 모아둔 열을 방출하다 보니 주변 시골과 달리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죠.

서울의 밤 기온이 30도를 넘는 ‘초열대야’가 나타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햇볕을 받는 건물 옥상을 쿨루프로 바꾸면 도시 전체의 열섬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게 조 소장의 설명입니다.

그는 “태양의 에너지가 실제로 건물 내부로 전달되는 건 5%밖에 안 되고, 나머지 95%는 건물을 데우고 서울의 대기 온도를 높인다”며 “쿨루프를 하면 건물 자체를 데우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열대야가 사라지고 도시 전체가 시원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쿨루프로 바꾸면 서울 최대 2.3도↓ 

자원봉사자들이 서울의 건물 옥상을 쿨루프 페인트로 칠하고 있다. [사진 십년후연구소]

자원봉사자들이 서울의 건물 옥상을 쿨루프 페인트로 칠하고 있다. [사진 십년후연구소]

그렇다면 서울의 모든 건물 옥상을 쿨루프로 바꾸면 온도를 얼마나 낮출 수 있을까요.

오규식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등 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중규모 기상모델(WRF-ARW)을 활용한 서울시 옥상녹화와 쿨루프의 기온저감 효과 분석’ 논문에서 이를 수치로 계산해 봤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서울시 전체 건축물 옥상 면적 중 쿨루프 조성이 가능한 면적은 96.3%에 달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쿨루프로 바꾸면 기온이 얼마나 떨어질지를 6월 기준으로 시간대별로 시뮬레이션했습니다.

서울 오후 3시 평균기온 분포(현재) [자료 오규식 한양대 교수 연구팀]

서울 오후 3시 평균기온 분포(현재) [자료 오규식 한양대 교수 연구팀]

서울 오후 3시 평균기온 분포(쿨루프 적용시) [자료 오규식 한양대 교수 연구팀]

서울 오후 3시 평균기온 분포(쿨루프 적용시) [자료 오규식 한양대 교수 연구팀]

그 결과, 오전 7시부터 기온 차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해 정오에는 2.3도까지 차이가 났습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3시에도 2도가량 기온이 떨어지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자치구별로는 용산구와 송파구가 다른 지자체보다 기온 저감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쿨루프는 가장 많은 양의 태양복사에너지가 도달하는 주간에 태양복사에너지를 반사하고, 저장과 흡수를 최소화해 도시 기온상승 억제 효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특히 공원과 녹지, 하천 주변의 건축물에 쿨루프를 적용하면 기온 차가 크게 나타나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도심 온도 낮추려 도로까지 흰색으로  

해외에서도 도시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대도시인 로스앤젤레스(LA)는 지난해 여름부터 흥미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데요.

LA의 쿨 페이브먼트 파일럿 프로젝트. [The Bureau of Street Services, LA]

LA의 쿨 페이브먼트 파일럿 프로젝트. [The Bureau of Street Services, LA]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를 흰색 계열의 특수 페인트로 칠하는 ‘쿨 페이브먼트 파일럿 프로젝트’(Cool Pavement Pilot Project)입니다.

실제로 시내 14개 구간의 도로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일반 도로보다 5.5도가량 기온이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을 앞둔 일본 역시 극심한 폭염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에 도쿄도(東京都)는 마라톤 코스와 경기장 주변 도로를 열을 반사하는 코팅재로 덮거나, 커다란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드는 등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조윤석 소장은 “아이가 열이 40도가 넘으면 급하게 열을 식혀줘야 하는 것처럼 많은 대도시가 현재 기후변화 때문에 위급 상황에 처해 있다”며 “10년 뒤에 닥칠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도시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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