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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간 리라화 40% 넘게 폭락···터키 IMF행 거부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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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터키 리라화 급락으로 인한 금융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확산하고 있다. 세계 주요 증시와 신흥 시장 통화 가치가 하락하자 터키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IMF 체제를 “정치적 주권을 포기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리라화 폭락으로 세계 금융시장 요동 #IMF 구제금융 가능성 제기되지만 #터키 "정치 주권 포기"라며 강력 반발 #IMF발 긴축 재정에 민심 성나면 #현 정부 국내 정치 손실 크기 때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P=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터키가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라며 "아르헨티나의 경우처럼 결국 IMF가 터키 사태에 개입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터키 대외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53%다. 독일 도이체방크는 외채 비중을 이보다 높은 70%로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빚을 갚으려면 터키는 연평균 2000억 달러를 빌려야 한다. 이를 마련하지 못하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올해 초 대비 40% 이상 하락했다. 통화 가치 하락으로 터키가 갚아야 할 빚은 더욱 늘었다.

현재 터키는 IMF 이외에는 금융 지원을 얻을 곳이 마땅치 않다. 이미 터키에 거액의 대출이 물려 있는 유럽 은행들은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이번 리라화 급락 사태가 미국과의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지원 가능성은 적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다른 동맹을 찾겠다"고 엄포를 놓은 만큼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내밀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미국과의 경제 갈등으로 여유가 없다.

하지만 터키는 어떻게든 IMF행을 피할 태세다. IMF 대변인은 지난 10일 "터키로부터 금융 지원을 요청받지 않았으며, 터키가 이를 검토하고 있다는 어떤 정보도 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IMF 구제금융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IMF가 요구하는 경제 개혁과 긴축정책에 응하는 건 집권 15년 차인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정치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IMF의 최대 출자국이자 이사회 멤버인 미국이 터키 지원에 동의할지도 불투명하다. 물론 미국이 IMF를 통해 터키를 통제하기 위해 지원에 동의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터키가 IMF 구제금융 지원을 받으면 미국은 IMF 이사회 멤버로서 터키에 가혹한 개혁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책 폐기를 요청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에르도안에게는 국내 정치적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IMF 체제는 터키 경제가 가장 나빴던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IMF의 요구에 따라 복지 지출을 줄이고 공공 서비스 요금과 세금 인상 등 긴축 재정에 들어가면 국민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터키 총리에 올라 11년간 재임한 뒤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15년째 장기 집권하면서 경제를 대통령 일가가 장악했다. 올해 40세인 사위를 재무장관에 앉히기도 했다. 과도한 대외부채를 일으켜 교량과 터널 등 대형 건설 사업을 벌이면서 외환위기를 불러오게 됐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 3월 터키 국가 신용등급을 Ba1에서 Ba2로 하향 조정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도 각각 5월과 7월 터키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낮췄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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