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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어 터키, 경제 냉전시대의 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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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트럼프의 트윗과 에르도안의 연설. 터키 리라화 급락으로 시작해 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한 것은 이 둘이었다. 방아쇠를 먼저 당긴 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10일(현지시간) 오전 8시47분 트위터에 “방금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두 배로 올리는 안을 승인했다”고 썼다. “우리의 강한 달러 대비 터키 리라화는 급속히 하락하고 있으며 지금 터키와 (미국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덧붙여 의도를 분명히 했다.

직후 리라화 가치는 죽 빠지기 시작했다. 이날 하루 14% 하락했다. 같은 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이 터키를 겨냥해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 달러와 유로·금이 탄환과 포탄·미사일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외 부채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50%(도이체방크에 따르면 70%)를 넘는 취약한 경제 구조가 금융위기의 근본 이유지만 낙타 등에 지푸라기를 얹은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바야흐로 경제 냉전시대다. 20세기 중반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냉전시대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이념·체제 간 대립이었다면 지금은 국익을 지키기 위한 경제전쟁으로 바뀌었다. 무기도 피해도 모두 경제로 나타난다.

옛 냉전시대처럼 적과 동지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미국은 유럽연합(EU)과도 일전을 벌이다 지난달 휴전했다. 철강에는 이미 관세를 매겼고, 자동차는 관세 부과 위협을 하던 중 협상으로 급선회하면서 일단 대상에서 빠졌다. 멕시코와의 무역 협상에서는 자동차업체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겉으론 멕시코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문제 삼았지만 속내는 미국과의 제조 비용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동맹국인 일본에도 관세 무기를 썼다.

경제 냉전의 최대 전쟁터는 중국이다. 미·중이 전면전을 벌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중국 제조 2025’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항공·로봇 등 첨단 분야를 육성해 2025년까지 핵심 소재·부품 산업의 70%를 중국산으로 채우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기술적으로 자립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앞으로 미국 내 일자리와 미국 기업의 이익이 감소하거나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크지만 미국의 첨단기술을 가장 많이 사 가는 곳도 중국이다. 예컨대 중국은 보잉의 최대 고객이다.

냉전시대의 군비 확장 경쟁은 경제 냉전시대에도 적용된다. 혁신 경쟁이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잃지 않으려는, 또는 얻으려는 싸움이다. 군비 경쟁 과정에서 과학기술 발전과 우주 개발이 가능했듯 혁신 경쟁은 미·중의 첨단기술과 산업 역량을 더욱 끌어올릴 것이다. 인류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으로선 고달픈 일이다. 우리가 소득주도 성장에 몰입한 사이 세계 경제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