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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안희정 1심 무죄 … 도덕적·정치적 무죄 판결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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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아온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14일 “간음과 추행 상황에서 업무상 위력의 행사가 없었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수행비서 김지은씨의 공개적인 ‘미투’ 폭로가 나온 지 5개월 만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성관계 과정에서)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정황은 없으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 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르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는 판결 이후 “부끄럽다. 다시 태어나겠다”고 말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소셜 미디어에 무죄 판결을 축하하고 정치 복귀를 촉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반면 김씨 측은 즉각 항소의 뜻을 밝혔다. 여성계도 “이번 판결이 성폭력 사건의 강력한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부정하고 여전히 업무상 위력을 엄격하고 좁게 해석해 향후 성폭력 고발을 어렵게 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안희정 1심 무죄는 미투운동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비판했다.

이로써 여권의 대권주자에서 하루아침에 성폭행 피의자로 추락했던 안 전 지사는 일정 정도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그러나 일부 지지자들의 발언처럼 벌써부터 정치 복귀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성폭행 혐의는 벗었지만 그가 부하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도덕적 흠결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안 전 지사가 개혁적 이미지와 달리 주변 직원들에게 제왕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것도 드러났다. 도덕성과 깨끗한 사생활, 철저한 자기 관리는 우리 사회가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당연한 덕목이다. 그가 개혁과 진보를 외친다면 더더욱 그렇다. 젠더 감수성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번 판결은 1심에 불과하며 도덕적·정치적 무죄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깊게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