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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절 세운 파고다 아케이드, 전두환 시절 전격 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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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967년 정비사업 후 파고다 아케이드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탑골공원 내부. [중앙포토]

1967년 정비사업 후 파고다 아케이드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탑골공원 내부. [중앙포토]

해방 이후 탑골공원에 본격적으로 손을 댄 건 고 박정희 대통령이다.

정권 따라 얼굴 달라진 탑골공원 #노숙자 이유 북문·동문 출입 통제 #33인 독립선언 자리에 광장 조성 #내년부터 본격 정비사업 들어가

그는 1967년 민간자본 1억3000만원을 끌어들여 탑골공원을 확 바꿨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공원 담장의 절반 이상을 헐어내고 2층짜리 상가건물인 아케이드를 건립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공원은 마치 거대한 말발굽 같은 모양이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가 1912년 무렵 설치한 근대식 석조 대문을 떼어내고 강릉의 객사문(客舍門)을 본 따 지금의 남문을 세웠다.

민자를 유치하느라 건립을 허가한 아케이드 상가(‘파고다 아케이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공원을 둘러싼 2층 담장 격이어서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상업시설이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공원을 가려버린 데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당시 정부가 3·1운동이나 4·19혁명 등 반체제 운동의 시발점이 된 탑골공원에서 다시 ‘불온한’ 시위가 벌어지는 것을 대비해 일부러 막아선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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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부는 한때 아케이드 건립에 반대했지만 결국 예정대로 들어섰다. 당시 서울의 대표적 도서관이었던 공원 서남쪽 종로도서관은 이때 파고다 아케이드에 밀려 철거돼 사직공원으로 옮겨졌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파고다 아케이드는 반도 조선 아케이드(소공동), 신신 백화점(종각)과 함께 서울의 3대 아케이드형 상가로 한동안 각광을 받았다. 악기점, 양장점, 전자제품점 등 당시로선 고급 기호품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섰으며 불량품을 사거나 바가지를 쓸 경우엔 변상금과 택시비까지 지불하는 서비스까지 내걸었다.

파고다 아케이드는 전두환 정부 시절이던 1983년 전격 철거했다. 이때 파고다 아케이드에 있던 악기상들은 낙원상가로 대거 이동해 명성을 이어갔다.

공원경관을 해치는 흉물이었던 아케이드가 철거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탑골공원은 아직도 절름발이 신세다. 공원의 동서남북 네 문 가운데 북문과 동문을 항상 걸어 잠그고 있다. 공원 북쪽, 낙원상가 남쪽 사이 공간에 주로 몰리는 일부 노인이나 노숙자들이 문을 열어놓을 경우 공원 안으로 들어와 술을 마시는 등 이용 질서를 흩뜨릴 수 있어서다. 문을 잠가 이들의 접근을 불편하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가림막 역할을 하는 공원담장 너머에서 노상방뇨를 하거나 쓰레기 투기, 불을 피워 음식을 해 먹는 경우도 있어 화재 위험까지 안고 있다. 공원 자체는 물론 주변 정비까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탑골공원 내부는 문화재청과 종로구청, 공원 주변은 서울시에서 정비계획을 수립 중이거나 이미 실행 중이다.

서울시는 진작에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조직을 만들었다. 올해 140억원을 투입해 10여 개 사업을 진행한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요릿집 태화관이 있던 자리인 지금의 인사동 일대에 광장을 조성하고, 지하철 3호선 안국역과 종로2가 사거리를 잇는 공원 서쪽 삼일대로 주변 곳곳에 그날을 되새길 수 있는 시민 공간을 조성한다. 안국역은 3·1운동 테마 역으로 꾸민다. 내년까지 위안부 관련 국내외 자료를 발굴·수집해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전시회·국제 콘퍼런스를 열어 알리는 작업도 한다. 하지만 서울시의 사업에는 3·1운동을 처음으로 해외에 알린 당시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의 종로구 행촌동 가옥 ‘딜쿠샤’ 복원도 포함됐다. 38억원을 투입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지만 탑골공원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종로구청은 올해 문화재청으로부터 예산을 따내 공원 종합정비계획을 세운다. 공모를 통해 올해 용역업체가 선정되고 정비계획이 확정되면 내년부터 3, 4년간 수십 억원이 투입된다. 이 계획에 어떤 청사진을 담느냐가 앞으로 탑골공원의 앞날을 좌우하게 된다.

유성운·신준봉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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