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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요요마 “남·북한은 같은 달을 보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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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세 번째 바흐 무반주 전곡 음반을 내는 첼리스트 요요마는 ’바흐는 강물처럼 내 무의식 속에 늘 흘러다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소니뮤직]

세 번째 바흐 무반주 전곡 음반을 내는 첼리스트 요요마는 ’바흐는 강물처럼 내 무의식 속에 늘 흘러다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소니뮤직]

“남북한의 경계에서 바흐를 연주하고 싶다.” 첼리스트 요요마(63)가 8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남·북한의 이산가족은 같은 달을 보고 있다”며 “바흐는 바로 그런 달과 같은 음악”이라고 말했다.

바흐 첼로 전곡 3번째 앨범 #바흐라는 강은 지친 사람들 위로 #남북한 경계에서 연주하고 싶어 #사물놀이·불교 등 한국문화 배워 #앞으로 2년간 6대륙 순례할 것

요요마는 17일 바흐의 첼로 모음곡 전곡 음반을 내놓는다. 각 6악장으로 된 6개 모음곡은 첼로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대곡이다. 요요마의 전곡 녹음은 이번이 세 번째. 28세에 첫 녹음을 했고, 그리고 43세이던 1998년 두 번째 녹음했다. 두 번째 녹음 당시 조경 디자이너, 가부키 배우, 무용수 등과 함께 바흐를 해석하는 다큐멘터리도 내놨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동시에 정통으로 인정받는, 드문 첼리스트인 요요마가 20년 주기로 새로 탐구한 바흐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새 음반에서 요요마는 무게를 과감하게 덜어냈다. 리듬은 간결하고, 멜로디는 가볍고 익살맞기까지 하다. 서양 음악의 기틀을 마련하고 후대의 작곡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바흐에 대한 요요마의 해석은 인간적이고 때로 유머러스하다.

인터뷰에서 요요마는 “바흐가 강과 같다”고 했다. 그는 “그 안에 다양한 것들이 담겨 있고,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며 “무엇보다 보편적 음악인 바흐를 남북한의 경계에서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바흐 새앨범

바흐 새앨범

바흐 무반주 전곡을 또 녹음한 이유는.
“바흐라는 강을 통해서 바다에 닿고 싶었다. 강에는 우리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물을 비롯해 많은 좋은 것들이 담겨 있다. 바흐 역시 어려운 시대를 지나는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건강, 삶, 환경 등 모든 어려운 이슈에 지친 우리를 쉬게 한다.”
앨범 발매를 계기로 2년 동안 6개 대륙에서 바흐 연주를 한다. 이번엔 콘서트홀에서만 공연하지 않는다고.
“콘서트홀은 훌륭하고 멋지다. 특히 소리를 제대로 디자인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멀고 때로는 비싸다. 그래서 텍사스와 멕시코의 경계에서 연주하는 등 새로운 곳에서 연주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하고 싶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가.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요요마가 남북한 청중을 초청해 연주하길 원한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고 좋다고 느낀다면 도와줄 거라 믿는다. 희망이다. 남북한엔 이산가족이 있지 않나. 바흐라는 강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한과 북한에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달을 보듯, 함께 들을 수 있는 바흐를 연주하고 싶다.”
바흐의 어떤 점이 그의 음악을 보편적으로 만드나.
“바흐는 모든 인간의 감정에 대해 공감을 잘했다. 동시에 그는 객관적으로 감정들을 그려낸다. 인간에 대해 이해하지만 간섭하지는 않는 작곡가다. 인간의 조건과 환경에 대해 과학적이라 할 정도로 연구를 많이 했고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했다. 때로는 심각하면서도 톡톡 튀고 즐거운 것이 바흐의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바흐의 음악이 단지 클래식 음악 또는 바로크 시대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흐는 어떻게 변화했나.
“다음 달에 두 번째 손주를 본다. 내 아이들은 많은 일을 빨리해냈다.(웃음) 처음 녹음했을 때 나는 초짜 아빠였다. 그 사이에 영적인 인생을 살았다. 무엇보다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나를 완전히 바꿔놨다. 내가 지구의 다른 편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열도록 해줬다.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가와 함께 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사물놀이, 불교…. 그 배움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 유라시아, 시베리아, 몽골까지 연결된다. 바흐는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최대한의 상상력으로 먼 곳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바흐가 그리려 했던 세계가 좀 더 잘 보인다. 이번엔 삶이 만드는 에너지에 대해 그리려 했다.”
총 여섯 곡의 36개 악장 중 바흐의 정수를 보여주는 부분이라면.
“바흐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3번의 5번째 곡인 부레(Bourree)는 어린아이가 첼로를 2년만 해도 할 수 있을 만큼 쉽다.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표현된 바흐를 만날 수 있다. 파블로 카잘스가 좋아했던 5번의 사라방드(Sarabande)도 단순하면서 깊다. 하지만 나에게 진짜 놀라운 곡은 첫 번째 곡의 첫 악장인 프렐류드(Prelude)다. 이 곡의 시작일 뿐 아니라 삶·자연·세계의 시작이다. 모든 시작하는 것들에 보내는 축하와 같은 곡이다.”
4세에 바흐 무반주 조곡을 처음 연주했고 그동안 완성도 높은 연주와 녹음을 셀 수 없이 해냈다. 20년 만에 바흐 곡을 다시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필요했나.
“역시 강의 비유를 꺼내야 하는데, 강은 우리가 거기에 있든 없든 늘 존재한다. 사람의 무의식과 같다. 바흐가 그렇다. ‘자 이제 3개월 동안 다 접고 바흐만 하자’ 이런 식으로 준비하진 않았다. 내 무의식 속에 늘 바흐가 흘러다니고 있었다. 의식의 세계로 돌아와서 샅샅이 보면 조약돌도 물고기도 있는 게 강이지만, 의식 하지 않아도 계속 흐르고 있는 게 강이다. 내게 바흐가 그렇다.”
이번이 ‘마지막’ 바흐 모음곡 녹음이라고 했다.
“지금 63세다. 83세 때도 연주를 계속한다면 행운이겠지만 내 손과 팔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마지막이라 느끼지만 그 역시 100% 확신할 수는 없다. 확실한 건 마지막으로서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였다는 것이다.”

요요마는 10월 17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실크로드 앙상블 무대에서도 바흐의 무반주 조곡 1번 중 사라방드를 연주한다. 한국과 베트남 등의 전통음악을 주제로 각 나라의 민속악기 연주자와 함께 하는 무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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