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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정답 집착하는 한국 교육, 미래 인재 양성은 ‘나 몰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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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세계적 교육 대변혁의 시기에 우리의 교육 정책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 때 교육 정책을 책임졌던 필자로서 너무나 안타깝고 국민께 죄송하다. 무엇보다 교육 대변혁의 세계적 미래 추세를 정확히 이해하고 교육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는 현재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경우 약 65%가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인공지능(AI)이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고차원적 일까지 척척 해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젊은 세대가 곧 사라질 직업을 위한 교육을 여전히 받는 것은 우리만이 아닌 세계적 문제이며 인류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다.

공론화위원회의 4개 대입 개편안 #미래 문제에 대한 고민 전혀 없어 #정답만을 요구하는 대입 제도로는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 기르지 못해 #AI·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학습과 #게임·증강현실 이용한 에듀테크로 #평준화·다양화 넘은 개별화 학습 #교육부 주도하던 교육 변화 방식도 #민간 주도로 혁신하고 협력해야

18세기 프로이센에서 시작되어 250년이 지나도록 큰 변화 없이 유지됐던 학교 모델을 혁명적으로 바꿀 때가 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학습혁명의 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는 경제 성장 둔화와 소득 불균등 확대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서민의 허리를 휘는 사교육 부담과 학생들의 더 높은 점수를 위한 암기와 정답 맞히기의 무한 입시 경쟁을 한국에 특수한 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세계적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우리 교육 문제를 다시 본다면 대량 생산 방식의 프로이센 교육 모델이 가지는 한계점이 한국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 교육부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공론화위원회가 검토한 네 가지 대입 개편안 어디에도 이러한 세계적 미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없었다. 무엇보다 먼저 학습혁명의 네 가지 큰 방향에 대하여 국민 공감대를 조성하여야 한다.

공론화의 대입 개편안, 미래 고민 없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첫째, 앞으로 어떠한 인재를 양성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향후 10년에서 20년 사이 모든 직업의 절반가량이 자동화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학생들은 훨씬 폭넓고 깊이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앞으로는 급격한 기술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기 위하여 평생 배워야 하므로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역량보다는 ‘어떻게 배우는 지를 배우는(learn to learn)’ 자기 주도 학습 역량이 중요하다. 또 여러 사람과 팀을 이루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하므로 창조적 문제 해결 역량과 소통 기반 협력 역량이 요구된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조지프 아운(Joseph Aoun) 총장은 과거 교육에서 읽기·쓰기·계산의 문해력(literacy)이 기본이었다면 이제 사람이 기계에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고차원의 세 가지 문해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엄청나게 증가하는 다양한 정보들을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문해력 ▶코딩과 공학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공학적 문해력 ▶인문학·소통 역량·디자인 역량을 갖춘 인간적 문해력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수능에서 하나라도 더 정답을 맞히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현재의 대입 제도로는 결코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학생에게 정답을 찾도록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역량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공론조사에서 수능 확대에 손을 든 참여자들이 많았을까? 만약 우리 교실에서 학생에게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학습이 이루어지고 이에 근거하여 교사들이 학생을 평가하는 것에 대하여 학생과 학부모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었다면, 수능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에게 특화된 맞춤학습은 세계적 추세

둘째, 대입 제도 개편만 가지고 국민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교사의 교수·학습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국민 공감대 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학습 환경을 디자인하는 교사’라는 보고서를 최근 출간하였다. 여기서는 교사들이 강의와 같은 대량 생산 방식이 아니라 교실의 모든 아이에게 맞춤학습을 디자인해주는 세계의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의 앞서가는 교사들은 이미 거꾸로 학습과 같은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 게임을 통하여 학생을 학습에 몰입하게 하는 게미피케이션(Gami fication) 프로젝트 학습과 같은 경험 학습(Experiential Learning), 다언어와 토론 학습, 메이커 학습 등 다양한 교수·학습 방식을 동원하여 학생에게 최적의 학습 경험을 디자인하고 있다. 만약 우리의 교사들도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이렇게 맞춤학습을 디자인할 수 있게 된다면, 수능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가장 우수한 학생이 교사가 되는 등 교사가 디자이너로 전문화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교육계의 오래된 논쟁이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교육전문대학원의 설립을 교육계가 나서서 제안하여야 한다. 2년 석사 과정의 교육전문대학원을 점진적으로 확대 설치하여, 학부 전공과 관계없이 학생을 선발하여 2년 동안 교수·학습 방법을 중심으로 현장 교육을 강화하고, 졸업생에게는 임용시험 없이 졸업 후 2년의 수습 교사 기간을 거쳐 정규 교원으로 임용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교원 양성 체제를 구축하여 모든 교사가 프로젝트 학습과 수행 평가를 책임지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아이에게 최적의 맞춤학습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교사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각 교육청에서도 교사가 모든 학생에게 맞춤학습을 디자인해줄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주고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에듀테크 활용하면 학습혁명 가능

셋째, 최첨단 에듀테크(edu-tech)를 적극적으로 학습 현장에 도입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조성하여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학습혁명이 일어나야만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학습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맞춤형 학습, 게미피케이션·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을 통하여 학생들을 학습에 몰입하게 하는 기술, 세계의 아이들이 접속하여 함께 학습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 기술 등 최근 에듀테크의 발전은 눈부시다.

영국은 교사에게 새로운 코스웨어나 에듀테크 디바이스를 살 수 있는 바우처를 지급하여 에듀테크 시장을 키우고 있다. 우리는 20조가 넘는 사교육 시장을 학습혁명을 뒷받침하는 에듀테크 시장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할 예정인 IT 인프라 강국인 만큼 어느 나라보다 빨리 에듀테크를 학습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최첨단의 에듀테크는 교사에게 주어진 교육 과정에 따라서 교수·학습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부담을 크게 줄일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는 수학과 생물학 등의 기초 과목에 인공지능이 학생 개인의 소질과 잠재력에 맞추어 상호 작용적으로 학습 경로를 제공하는 ‘맞춤형 학습(adaptive learning)’을 도입하여 6만5000명 학생에게 학업 성과를 크게 향상해 주목받고 있다. 우리 초·중·고 교실에도 학생의 암기와 이해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맞춤형 학습과 같이 ‘하이테크 학습’을 도입하는 한편, 적용·분석·평가·창조와 같이 고차원적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학생이 소규모 그룹으로 프로젝트를 하거나 학생에게 질문과 토론을 통한 하이터치 학습을 하도록 하여,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최적의 하이터치 하이테크 학습을 디자인해주자는 것이다.

교육부 주도 교육정책 혁신해야

마지막으로, 학습의 혁명적 변화를 위하여 교육부가 주도하던 그동안의 교육의 변화 방식에서 탈피하여 교사·학교·대학·창업가·사회적 기업가·민간재단·미디어·비정부기구(NGO)·정부 출연 연구원 등이 주도적으로 혁신하고 협력하는 생태계를 조성하여야 한다. 이제 학계의 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더는 교육부의 통제와 규제에 대하여 뒤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미래 대학을 스스로 디자인하여야 한다. 국민과 학생들에게 엄청난 고통이 되는 입시 제도를 바꾸는 것을 선진국 대학처럼 대학 자율에 돌려 달라고 요구하여야 한다. 대학 총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학습혁명을 유인하는 대학 입시를 디자인하고 이러한 노력에 대하여 국민이 신뢰를 보낼 때 대입 자율은 확보될 것이다.

교육을 정치적 혹은 이념적 수단으로 삼거나 교육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려는 단기 처방과 인기 영합에 급급하다 보면, 교육 정책이 미래 변화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로 역주행하게 된다. 최근 교육 정책은 평준화와 획일화의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다. 평준화에 대한 대안으로 추진하였던 다양화가 특목고·자사고·일반고 간의 수직적 차별화를 초래한다는 반발에 직면하면서 다시 평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개별화 학습(personalized learning)’ 혹은 대량 맞춤학습을 통하여 수월성 교육과 평등 교육을 동시에 달성할 기회의 창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이제 수월성 교육과 평등 교육 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대량 맞춤학습 혹은 개별화 학습을 통하여 평준화와 다양화의 취지를 모두 살리는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자사고 혹은 특목고를 없애기보다 모든 학교에서 그리고 모든 교실에서 대량 맞춤학습이 일어날 수 있도록 ‘평준화와 다양화를 넘어서 개별화’로 교육계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 커미셔너·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리셋 코리아 교육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