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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조종사 기부금 냈던 공군 병장…과거 미담 제보 쏟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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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승 병장이 공군본부를 방문해 이성용 공군참모차장에게 군 복무 중 병사 월급을 아껴 모은 돈 320만원을 전달했고, 이 차장은 손 병장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사진 공군]

손유승 병장이 공군본부를 방문해 이성용 공군참모차장에게 군 복무 중 병사 월급을 아껴 모은 돈 320만원을 전달했고, 이 차장은 손 병장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사진 공군]

올 여름 힘든 폭염 속에서 지난 7일 공군에서 시원한 미담이 있었다. 손유승 병장(22)이 공군 순직 조종사 유자녀를 돕기 위해 조성된 ‘하늘사랑 장학재단’에 월급을 아껴 모은 320만 원을 기부해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손 병장의 봉사활동과 기부 사례가 더 많이 있다는 제보가 쏟아졌다. 마침 휴가를 나와 대구에 머물고 있는 손 병장과 8일 수화기 너머로 직접 얘기를 들어봤다.

병사 최초 순직 조종사에 기부 #알고보니 평창에서도 자원봉사 #장학금 받으면 모두 기부금으로

손 병장이 이번에 기부에 나선 것은 대구 제11전투비행단에서 군 복무한 인연에서다. 그는 지난 4월 경북 칠곡에 추락한 F-15K 순직 조종사와 함께 근무했었다.

“순직한 조종사는 영공 방위 임무 완수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 평소 저에게 인간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셨던 따뜻한 분이었다. 저는 작전운용체계병으로 근무하면서 조종사 항공작전 준비업무를 지원했는데 평소 (순직한) 두 분 조종사들이 저와 병사들을 격려해 주었다. 두 조종사는 제가 다소 실수해도 칭찬으로 격려했고 식사도 사줬던 기억이 남아 있다. 저의 작은 정성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한 조종사의 희생을 추모하고 남겨진 유가족을 위로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대구에 있는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소속 F-15K 전투기가 지난 4월 대구 기지에서 이륙해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가던 중 추락했다. [사진 연합뉴스]

대구에 있는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소속 F-15K 전투기가 지난 4월 대구 기지에서 이륙해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가던 중 추락했다. [사진 연합뉴스]

공군은 손 병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공군 관계자는 “지금까지 병사가 기부금을 기탁한 경우가 없어 손 병장이 첫 사례가 됐다”고 전했다. 손 병장이 공군에 입대한 남다른 이유도 있었다.

“공군은 (육군과 해군보다) 복무 기간이 길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시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휴가 등 시간을 계획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공부하는 환경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준비해 지난해 5월 한국사자격증에 합격했다. 입대 전부터 고민하던 봉사활동도 대대장님과 부대원 배려를 받아 실천할 수 있었다.”  

손 병장은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대회에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는 2016년 8월 22일 입대 후 위로 휴가와 포상 휴가, 말년 휴가 등을 차곡차곡 모은 뒤 부대 허락을 받아 자원봉사에 참가했다.

평창동계올림 자원봉사자 발대식에서 자원봉사자 대표들이 연단에서 퍼포먼스를 하고있다. [사진 중앙포토]

평창동계올림 자원봉사자 발대식에서 자원봉사자 대표들이 연단에서 퍼포먼스를 하고있다. [사진 중앙포토]

손 병장은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다. 전공 경험을 살려 대회에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았다. 대변인실 뉴스데스크에서 근무하며 국내외 취재진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지원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엔 곧바로 부대로 복귀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에 기여하고 싶었다. 스포츠 경영과 마케팅을 공부하는 전공에도 도움이 되는 1석2조라고 생각했다. 세계각국 기자들을 만나 정보도 교류하는 소중한 경험을 가졌다. 봉사활동이지만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얻었다.”  

선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손 병장은 대학 입학 후 1ㆍ2학년 과(科) 수석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받은 장학금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내놨다. 고교생 시절이던 지난 2013년에도 성적 우수 장학금과 용돈을 모아 “어려운 학우들을 위해 써 달라”며 장학금을 건넸던 사실도 확인됐다. 고교 입학 때 받은 동창회 성적 우수 장학금과 개교 기념일 때 받은 동기회 장학금, 평소 모아뒀던 용돈 등을 합해 300만 원을 학교에 기부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서 한 학생이 조문을 마친 뒤 추모 글이 적힌 게시판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서 한 학생이 조문을 마친 뒤 추모 글이 적힌 게시판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에도 나섰다. 대구고 3학년에 재학하던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지원 성금’을 마련했다. 동창회로부터 받은 성적 우수 장학금 169만 3920 원 전액을 학교에 기탁했다. 매순간 시간이 아까운 고교 3학년 수험생이지만 ‘1학급 1생명 살리기 운동’에도 앞장서 참여하며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교실에서 자습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급히 들어와 TV를 틀어 소식을 전해주셨다. 같은 또래 학생이라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장학금 기부가 전부였던 게 오히려 미안했다. 침몰사고 아픔을 진정으로 공감하며 희망을 심는 마음으로 나눔에 참여한 것 뿐이었다.”

대구고 재학 당시 손유승 병장 [사진 대구시교육청]

대구고 재학 당시 손유승 병장 [사진 대구시교육청]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범일중학교 1학년에 재학하던 2009년에도 선행읋 했다. 당시 고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형인 손상혁 씨와 함께 대구시교육청을 방문해 난치병학생돕기 성금으로 신상철 교육감에게 400만 원을 전달했다. 형인 상혁 씨는 240만 원, 동생인 손 병장은 160만 원을 각각 내놨다. 매달 용돈과 장학금, 세뱃돈까지 모은 것이다. 대구 지역사회에서는 두 형제의 따뜻한 감동이 지금까지도 회자 된다.

손 병장의 선행은 어릴 적부터 싹텄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인 2003년 당시 장애인복지시설에 있던 지체장애아동과 결연을 맺은 뒤 매월 1만 원씩 내는 기부를 시작한 것이다.. 손 병장에 앞서 형인 손상혁 씨가 모범을 보였고 이를 본 동생인 손 병장도 적극적으로 선행에 나서게 됐다.

2017 위아자장터 부산행사 개인장터에 많은 시민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2017 위아자장터 부산행사 개인장터에 많은 시민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손상혁 씨는 2001년 범일초등학교에 재학하던 중 ‘아나바다운동’, ‘알뜰 바자회’ 등에 점퍼를 내놓았는데 이를 입고 좋아하는 친구 모습을 본 뒤 본격적인 기부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그때부터 용돈을 모으기 시작해 그 해 집안 형편이 어려운 30명에게 방한복(점퍼)을 선물했다. 2002년부터 자매 결연을 한 요양원에 매월 1만 원씩 기부했다. 손상혁 씨도 손 병장과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재학 중이다. 손 병장은 대학도 형을 따라 진학했다.

손 병장은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구 요양원에 꾸준히 지원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부친께서 고향 의성에 교육사업과 중학교 야구부 지원을 하신다. 형도 저도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기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는 21일 전역을 앞둔 손 병장은 이제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

“애도하는 마음과 진심을 전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특별한 기부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맞춰서 제가 할 수 있는 기여를 하고 싶다. 대학에 돌아가는데 4차산업혁명에 맞춰 사물인터넷과 스포츠를 연결하는데 관심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꿈 많은 청년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경북 칠곡군 유학산 인근에서 비행훈련 도중 F-15K 전투기 추락으로 순직한 조종사 2명의 영결식이 지난 4월 7일 오전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웅비관에서 열려 슬픔에 잠긴 동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뉴스1]

경북 칠곡군 유학산 인근에서 비행훈련 도중 F-15K 전투기 추락으로 순직한 조종사 2명의 영결식이 지난 4월 7일 오전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웅비관에서 열려 슬픔에 잠긴 동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뉴스1]

'하늘사랑 장학재단'은 1982년 사고로 순직한 고 박광수 중위(공사 29기)의 부모가 28년 동안 모아온 1억 원의 유족연금과 조종사 2700여 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2억여 원의 성금을 기금으로 2010년 9월에 창립됐다. 이후 2012년부터 매년 비행임무 중 순직한 공군 조종사의 유자녀를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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