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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헛대책으론 ‘자영업 몰락’ 못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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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자영업자들의 비명이 하늘을 찌른다. 최악의 불황, 최저임금 인상에 폭염까지 겹쳤다. 확 준 고객마저 완전히 끊겼다.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지지율 폭락으로 이어지자 정부는 안달이 났다. 임대료를 묶네, 카드 수수료를 낮추네 하더니 난데없이 청와대에 자영업비서관까지 뒀다. 과연 이게 맞는 방향인가.

온라인 쇼핑 탓에 ‘소매업의 종말’ 닥쳐 #포화상태인 자영업 구조조정이 바람직

얼마 전 뉴욕에서 온 지인을 만났다. 인사 겸 “별일 없냐”고 물었더니 “맨해튼 상점들이 줄줄이 망한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뉴욕 맨해튼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고? 거긴 역대 최고 수준의 호황 아닌가? 4% 안팎의 고성장에, 넘치는 일자리로 미국의 상점들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려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실상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상점이 줄도산하면서 좋은 목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맨해튼 곳곳이 빈 가게 투성이라는 거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에서 문을 닫은 상점은 9000여 개. 2000여 개였던 1년 전의 4.5배에 이른다.

알아보니 ‘소매업의 종말(retail apocalypse)’이란 새로운 현상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선진국을 덮치고 있는 거였다. 이유는 다양했다. 중산층의 몰락, 소매점의 포화 상태 등등. 하지만 최대 원흉은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쇼핑이었다. 전자제품·옷·문방구에서 식료품까지 뭐든지 인터넷으로 사들이는 세태에 상점이 못 배겨난 거다.

소매점의 몰락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다. 유럽,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영국 상점도 줄폐업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소매점들도 살기 위한 변신에 한창이다. 물건을 파는 곳에서, 써보고 입어보는 체험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여기서 일단 접해본 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방식이다.

생뚱맞게 딴 나라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요즘 심각한 문제가 된 국내 ‘자영업의 위기’가 ‘소매업의 몰락’과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매업과 자영업은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이 땅의 자영업자 대부분이 소매업을 하는 까닭에 둘 간의 상관관계는 작지 않다.

지금 이 땅에선 자영업의 위기가 심각한 불황에다 높은 임금과 임대료 및 카드 수수료 탓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정부 대책도 이런 맥락에서 마련돼 있다. 하지만 자영업의 부진이 실은 인터넷 쇼핑 때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야 한다. 임대료를 억제하고 카드 수수료를 줄인들 자영업이 되살아날 리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 자영업자 지원책이라며 100년 이상 버틸 ‘백년가게’를 찾아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본디 뜻대로 백년가게가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자칫 헛돈만 쓰고 폐업을 양산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차라리 포화 상태인 자영업 시장의 경쟁을 덜기 위해 진입을 줄이고 후유증 없는 폐업을 유도하는 게 낫다. 물론 번듯한 취직 자리를 팽개치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영업이 마지막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회적 약자 보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그럼에도 불편한 진실일지언정 세상 변화를 빠르게 읽어내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는 게 정부의 도리다. “길거리 상점의 시대가 저물고 있으니 옷을 팔더라도 길거리 상점이 아닌 인터넷 쇼핑몰을 하라”고 권하자는 얘기다.

1997년 문자메시지가 선보였을 때는 비웃음이 쏟아졌다. “전화하면 되지 누가 메시지를 보내겠느냐”고. 그랬던 게 불과 10여 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메시지 보내면 되지 누가 전화하냐”로. 세상 변화의 이치가 이런 만큼 물 흐르듯 시류(時流)에 몸을 맡기는 게 순리요, 지혜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