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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밤으로 떠나간 젊은 시인들의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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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8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빼어난 산문가, 정확한 불문학 번역자였다. [중앙포토]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8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빼어난 산문가, 정확한 불문학 번역자였다. [중앙포토]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가 8일 오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병으로 별세했다. 지난 2월 건강이 악화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지 6개월 만이다. 73세.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 별세 #섬세·정확한 문장 남긴 불문학자

해방둥이로 1945년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토종 불문학자였다. 고려대에서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평론가 김현에 의해 발탁돼 40대 중반에 뒤늦게 문학평론에 입문했으나 특유의 섬세하고 정확한 시 비평, 미문(美文)으로 사랑받았다. 특히 한국 젊은 시인들의 난해한 세계를 시의 발생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 분석해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젊은 시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최정례·이경림·이수명·황병승·김이듬 시인 등이 고인에 의해 발굴됐다. 생전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힌 대목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프랑스 문학작품 번역에 힘써 프랑스 언어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집』을 우리말로 옮긴 게 최고의 번역 업적으로 꼽힌다. 한국시 연구에도 일가를 이뤄 이상의 난해시 ‘오감도’와 한용운·이육사·김수영의 세계를 정직하게 읽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후배 불문학자 조재룡 고려대 교수와 함께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출범시켜 오역 논쟁 수준이던 문학 번역을 인문학의 지위로 끌어올리려 했다. “원문을 살린 번역이 가장 좋은 번역” “선입견 없이 마음을 비워야 시가 잘 보인다”며 정직한 번역과 시 읽기를 강조했다.

문학 바깥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트위터 팔로워 숫자가 40만 명이 넘는다. 그에 힘입어 2013년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가 6만 3000부, 지난 6월 펴낸 『사소한 부탁』이 1만 3000부 팔렸다. 트위터 글과 번역에 관한 글을 모은 단행본 두 권이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페이스북에는 고인의 추모글이 넘친다. 김민정 시인은 “안녕? 선생님. 와줘서 나는 좋았어요. 와줘서 나는 행복했어요. 좀만 거기 있어요. 좀만 여기 있다 갈게요. 곧 만나요. 선생님 안녕!”이라는 글을 올렸다.

팔봉비평문학상·대산문학상·아름다운작가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 205호, 9일(목)은 301호, 발인은 10일 오전 10시다. 유족으로 부인 강혜숙 여사와 아들 일우, 딸 은후씨가 있다. 070-7816-0253.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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