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 2035

“텀블러에 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민경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드시고 가세요?” “아뇨. 일회용컵에 주세요.”

지난달부터 커피 주문을 할 때마다 가슴이 뜨끔했다. 하루 세끼는 못 먹어도 1일 3라떼는 마셔야 정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환경파괴의 주범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탓이다. 더구나 나는 빨대 없이는 기사 마감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생각이 막힐 때마다 빨대를 잘근잘근 씹어줘야 출구를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을 앗아간다니, 안될 노릇이었다.

결국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로 했다. 이달부터 카페 내 일회용컵 사용이 전면 금지되면서 불편한 마음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컵과 빨대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내게는 빨대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분명 가방에 텀블러가 있음에도 씻기가 마땅치 않아서 일회용컵을 요청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사실 일회용품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 지는 좀 됐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땐 몰랐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쓰레기 처리가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택배 상자며 배달음식 포장용기는 우리 집을 우리 동의 쓰레기 배출 일등공신으로 만들었다. 무더기 맥주캔과 커피컵은 그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비단 새로운 정책 시행을 외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결국 곧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일회용품의 주요 유입지인 마트와 세탁소는 비교적 쉽게 타협이 가능했다. 대형마트의 부직포 쇼핑백은 디자인이 귀여울뿐더러 내구성이 좋아 장바구니로 쓰기 안성맞춤이었다. 내심 뿌듯해하며 집안에 뒹굴고 있는 옷걸이 수십 개를 들고 가보니 세탁소에는 이미 회수통이 마련돼 있었다. 한쪽에 몇백개가 켜켜이 쌓여 있는 데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타협이 쉬운 항목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불편을 감내할 만한 메리트가 있었고, 실천방법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방적인 계도보다는 다양한 방법을 병행하는 것이 보다 빠른 정착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자발적으로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싶을 만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단 얘기다.

이를테면 더러운 텀블러를 들고 와서 씻어달라고 요구하는 진상손님과 알바생의 갈등을 유발하느니 고객 스스로 세척 가능한 공간을 제공하고, 보증금을 받고 대여가능한 다회용컵을 비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당근과 채찍만으로는 우물가를 찾는 사람들의 습관 자체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더 많은 방법이 고안된다면 비록 내일 커피 주문할 때는 일회용컵이 먼저 튀어나올지언정 언젠가는 자연스레 텀블러를 내밀게 되지 않을까.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